서울돈화문국악당 <2022 실내악축제>
※ <2022 실내악축제>를 감상한 두 작곡가 유은선과 유민희의 리뷰를 동시에 게재합니다.
‘실내악’이라는 말은 ‘독주’와 ‘관현악’을 제외한 중주곡 이상의 소편성으로 구성된 연주형태를 말한다. 전통음악계에서 ‘실내악’이란 용어는 각 악기별로 10명 내외의 편성이나 같은 악기군의 소편성 등으로 구분된다.
올해의 <2022 실내악축제>(이하 실내악축제)는 돈화문국악당이 향후 진행하고자 하는 ‘실내악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기획으로 매우 가치 있는 공연을 선보였다. 특히 악기군 별로 결합된 형태와 종합적으로 구성된 형태가 함께 선보인 무대였다. 기존에 악기군 별로 편성되었던 실내악이 전통적인 음악어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음악을 연주했다면, 최근의 추세는 현대를 넘어 미래로 가고 있는 현장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우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음악 만들기를 통하여 앙상블을 뛰어넘은, 보다 넓은 세계로의 진취적인 활동을 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축제에서는 악기의 연주형태로 구분하여 찰현악기(해금‧아쟁), 발현과 타현악기(가야금‧ 거문고), 관악기(대금‧소금‧피리‧생황 등)로 구성된 악기군의 구성과, 기존의 여러 악기가 고루 편성된 형태의 실내악을 함께 구성하여 좀 더 본격적인 실내악의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첫 날인 10일 공연은 찰현악기의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는 해금과 아쟁을 위주로 작곡된 작품들을 선보였다. 해금앙상블 셋닮은 최근 활발하게 독주 활동과 앙상블 활동을 병행해 온 연주자들로 구성된 팀이다. 지난 2018년 7월 창단 이후 음반 발매와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각기 오랜 시간 전통음악을 전공했던 음악적 배경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고유한 색깔로 독주 활동을 해온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앙상블은 치열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실내악곡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해금이라는 악기가 지닌 최대한의 장점과 고도의 기량을 중점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작곡가의 작품을 세 명의 연주자들은 각기 다른 독주를 하는 듯 어울리면서 완성도 높은 연주였다.
세 명의 아쟁연주자들로 구성된 아쟁앙상블 Bow+ing의 무대는 강렬함 속의 분명한 지향점을 지닌 곡들을 연주하였다. 거친 듯 부드러운 활대의 움직임을 통하여 같은 결로 연주하는 강함과 약함, 서로 다른 강도로 표현되는 섬세한 선율로서 실내악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셈과 여림을 감동적으로 느끼게 해 준 무대였다.
끝 곡으로 연주된 황재인 작곡 <어이아이(於異阿異)>는 해금과 아쟁이 찰현악기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형태의 농현을 하는 독특함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곡으로 여섯 명의 연주자들은 초연임에도 완성도 높은 연주로 이 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거문고라는 악기는 역사적으로 ‘백악지장(百樂之丈: 모든 악기 중 으뜸)’이라 불릴 만큼 전통음악, 특히 과거의 실내악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사랑방 음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던 악기이다. 그러나 최근 국악관현악에서의 사용은 그 명성과는 다른 상황을 보여주기도 할 정도로 여러 악기들과의 앙상블에서는 다른 처지에 놓여있다. 그런 거문고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준 활동이 어쩌면 거문고끼리의 앙상블이 아닐까 싶다. 12일 공연에 오른 한국거문고앙상블은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거문고음악의 발전과 새로운 음악장르를 모색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들의 연주는 거문고가 지닌 현대음악적 이면서도 전통적인 음색을 훼손하지 않는 음악적 표현으로 거문고만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연주를 선보였다.
가장 많은 팀이 결성되어 활동한 단일 악기 군(群)을 꼽자면 단연 가야금일 것이다. 그러나 팀이 많은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독창성을 발휘하기가 매우 어려운 점을 생각해 보면 현재 활동하는 가야금앙상블의 고민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서울가야금앙상블은 그런 무게감을 자신들의 기량과 실험적인 작품으로 가야금앙상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무대를 기대하게 하였고, 그 기대는 음악적으로 현란하게 무대에 펼쳐 보였다. 끝 곡으로 연주된 장태평 작곡 <거울>은 가야금과 거문고가 함께 편성된 곡으로 악기를 통한 진지한 자아성찰이라는 주제를 가야금의 영롱함과 거문고의 중후함을 대비시켜 두 악기의 특성의 조화를 이루고 때론 대비됨을 보여주었다.
실내악축제의 세 번째인 17일 공연은 관악기를 중심으로 한 시간이었다. 먼저 대금과 소금 퉁소로 구성된 연주팀 떼바람소리는 신명난 타악과 함께 같은 대나무를 사용하지만 악기의 크기와 연주방법에 따라 음색의 차이가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곡으로 다양한 연령층의 호흡을 통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연주를 보여주었다. 대금이나 소금 등 관악기는 호흡의 음악인만큼 연주자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서로의 호흡에서 비롯되는 가장 깊은 이해로부터 완성도 높은 앙상블을 보여주었다.
앙상블 후요는 피리의 다양한 음색과 대피리, 생황 등의 악기를 통하여 음악에 경계를 두지 않고 전통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을 아우르겠다는 목표를 적절하게 보여주었다. 악기의 구조와 특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연주자들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특히 숨을 통하여 공명되는 특성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예술적 완성도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전통악기의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기에 충분하였다.
돈화문국악당은 2021년 실내악축제를 통하여 ‘순수 전통악기만의 음악’을 지향하였고 이를 통하여 대중적인 실내악 단체들의 활동과는 차별되는 음악을 선보여 왔다.
올해의 실내악축제에는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만남이 포함되었다. 이는 전통 국악기의 섬세한 음색을 클래식 악기와의 만나게 함으로써 세계적인 음악시장으로의 확대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양악기와의 연주는 이미 활발하게 있어 왔지만 이번 무대의 조화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 보인다. 재즈에서도 예술적인 음악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전기 베이스(팬더 베이스)의 사용보다는 콘트라베이스를 사용하고 있는 예와 맥락을 같이한 것이라 여겨진다. 전통 국악기의 어쿠스틱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서양 클래식 악기들과 더불어서 공고히 하고자 하는 시도로 읽힌다. 전통악기와 서양악기의 어울림은 이전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고, 이것의 또 다른 차원으로 진일보한 음악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19일과 21일에 있었던 페스티벌 앙상블의 대미는 대편성으로 구성된 실내악 공연이었다. 소규모로 구성된 실내악과 국악관현악의 중간쯤 되는 규모의 연주로, 국악관현악의 축소보다는 실내악의 확장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이를 통하여 악기의 수로 규정되는 것이 아닌 음악적 앙상블을 통하여 정립되어야 하는 ‘실내악’의 정체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마지막 공연(21일)에서는 25현 가야금이 사용되기 시작하던 초반기 작품인 다섯 악기를 위한 <몽금포 타령>이 연주되어 실내악곡의 시대적 흐름을 체감할 수 있는 의미도 더하였다.
올해의 실내악축제는 예술감독(작곡가 김상욱) 제도를 도입하여 실내악의 전문성을 높이고, 보다 전문적인 음악연주에 집중하기 위한 노력으로 지난 해 공연과 차별화 되었다. 이는 실내악축제를 단순히 실내악곡을 나열하거나 단체들을 소개하는 차원으로서가 아닌 돈화문국악당을 중심으로 실내악 운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숨어 있던 실내악곡들을 이 시대의 무대로 이끌어 내고, 다시금 현대에 맞게 다듬어서 새로운 곡으로 자리 잡게 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기에 어떤 예술감독의 기획이 펼쳐질지 기대하게 된다.
돈화문의 실내악축제는 2021년에 이어 2022년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2023년을 기대하게 한다. 그런 만큼 고민도 클 것이나 실내악에 관한 발전과 방향에 대한 확고한 지향점을 가지고 더욱 중심을 잡아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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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수정: 2021.02.11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