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君子)로서의 이성천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가 편찬한 ‘한국작곡가사전’(1999)이 있다. 지난 20세기에 활동한 작곡가에 관해 소상히 기록했다. 사전에 수록된 모든 작곡가 가운데, ‘선비’ 이미지에 부합하는 단 한 명의 작곡가를 뽑는다면? 이성천(1936.5.28~2003. 9.26)이라고 답할 사람이 많다. 생전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다.
선생이 고인이 된 지 올해로 20주년이다. 그와 관련한 생전(生前)과 사후(死後)의 모든 것을 두루 다 떠올려보니, 결국 단 하나의 이미지가 지금 내 앞에 존재한다. ‘신라의 미소’로 통하는 ‘얼굴무늬 수막새’이다. 신라시대 기와에 새긴 그 얼굴과, 20세기 후반 국악창작의 한 영역을 묵묵히 수행한 선생의 얼굴이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이성천 선생이 딱 그런 사람이다. 평생 논어를 읽으면서, 공자처럼 살고자 했다. 이 시대에 조선의 예악(禮樂)을 가져와서, 이 시대에 맞게 정착시키고자 했다. 철학자인 공자가 예(禮)에 치중했다면, 음악가인 그는 악(樂)에 치중한 것이 좀 다를 뿐이다. 국립국악원에 가면 예악당(대극장)이 있다. 선생이 국립국악원 원장으로 재직(1995~1997) 중이던 1996년에 대극장이 건립되었다. 그가 처음 ‘예악당(禮樂堂)’으로 부르고자 했고, 여러 사람의 동의를 얻어서 지금도 우리는 이곳을 ‘예악당’이라 부른다.
작곡은 자맥질이자 선한 에너지
그는 ‘작곡만 하는’ 작곡가는 아니었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청교도(Puritan)적인 청빈함과 강인함으로 평생을 사신 분이다. 스스로도 대단한 작곡가라고 생각한 적이 전혀 없었다. 곡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세상을 놀라게 할 위대한 작품을 쓰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진 적도 없었다.
그는 작곡을 ‘자맥질’에 비유했다. ‘물속에서 팔다리를 놀리며 떴다 잠겼다 하는 짓’이 자맥질이다. 제주의 해녀가 까꾸리(갈퀴)를 들고 테왁에 의지하면서 자맥질을 하는 것과 자신이 곡을 쓰는 행위나 똑같다고 말했다. 작곡은 숙명처럼 주어진 업(業)이고, 그걸 늘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한 이성천 선생이 존재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곡을 위촉했을 때, ‘이 시대’와 ‘그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오선보를 성실히 채워나가고자 했을 뿐이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제자들도 그러하길 원했는지 모른다. 작곡의 기법이나 기술을 지도하기보다, 작곡가로서의 삶과 태도를 중시했다.
따라서 선생의 작품은 이른바 ‘악곡분석’을 통해서 밝혀지는 게 많지 않다. 그런 그의 여러 작품을 쭉 들어보면, 거기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공통적인 정서가 있다. 그게 바로 ‘선한 에너지’이다.
공자가 제자를 두루 두고자 했던 것처럼, 그 또한 그러했다. 특히 그가 서울대학교에 재직할 때 그랬다. 나 또한 이성천 선생께 좋은 영향을 받은 한 사람이다. 학창 시절에 선생을 교내 복도에서 만나 인사를 하면, “000 선생이 책을 냈더라고. 0000인데, 중강이가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라고 한 말씀 툭 던지고 사라지는 게 이성천 선생의 단면이다.
검소하고, 자연을 사랑한
‘한국작곡가사전’에 거명된 작곡자 중에서, 선생은 아마 가장 키가 큰 작곡가일 것 같다. 1980년대 서울대 음대 앞에 주차하고, 문을 열고 상체를 구부리면서 차에서 나오는 선생의 모습이 눈에 선연하다. 그는 ‘포니’를 타고 다녔다. 오래도록 ‘소형차’를 사수했다. 군자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늘 바르게 살아서, 그런 것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자 힘이다. 선생은 ‘검약의 상징’과도 같은 분이다.
이성천 선생은 ‘사슴’ 이미지와 딱 부합하는 분이다. 선생은 사슴처럼 살아왔고 노래했다. 늘 현세적인 욕심에 벗어나서 사슴처럼 살고자 한 그이기에, KBS국악대상 작곡상(1985)과 세종문화상(1996)이 주어졌다. 그리고 대한민국 작곡가 중에서, ‘감사패’를 가장 많이 받은 작곡가가 아닐까? 그는 때때로 뒤에 숨어서, 학교와 단체를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베풀었다.
선생은 늘 영생(永生)과 재생(再生)에 큰 의미를 두었다. 사슴은 동양의 영물의 하나로 십장생(十長生) 중 하나다. 사슴처럼 조금 먹고 조금 자면서, 늘 삶과 일의 가치를 생각하고 실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