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공간’을
전통 ‘공연’이 품을 때
한옥 같은 전통 건축물이 어느새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생산하고 관객을 불러들이는 공간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밤마실 외 서울 곳곳에서도 전통 건축물을 이용하고 응용한 공간 콘텐츠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잠시 밤마실 외 다른 공간의 이야기로 마실 가보겠습니다.
이재원┃궁중문화축전(2023‧봄)에서도 창덕궁 낙선재에서 관객참여형 공연 ‘낭만궁궐 기담극장’(4.30~5.3)을 선보였습니다. 고(古) 소설 ‘현씨양웅쌍린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재미뿐 아니라 고증과 검증도 거쳐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낙선재는 국가 보물이기에 공연이 끝나면 장비도 철수하고 다음 날 새로 설치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너무 좋아 50명에서 70명으로 확대 모집했고, 마지막 공연은 1백여 명과 함께했습니다. ‘시간여행, 영조, 홍화문을 열다’(5.2/창경궁 일원)도 있었습니다. 창경원의 창경궁 환궁 40주년을 맞아 영조의 오순 어연례(50세 생일잔치)를 재연했는데요. 어연례 결정 과정을 연극으로 연출한 관객참여형 공연이었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힘드니 생일잔치를 하지 않겠다’라는 영조와 입장이 다른 신하들 사이의 이야기를 창경궁 일대를 무대 삼아 2백여 명의 배우가 함께했습니다.
김지욱┃2013년에 운현궁 내에서 ‘이동형 창극’을 표방한 ‘란(蘭)’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원군과 조선의 여류 명창 진채선의 이야기로, 궁 내 여러 건물을 이동하며 극이 진행되었습니다. 이처럼 공연 콘텐츠에 영향을 주는 한옥은 남산골한옥마을 내에도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공간에 깃든 이야기와 역사를 바탕으로 해도 좋지만, 한편으로 공간을 이용하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공연자의 시선으로
전통 건축물을 바라볼 때
전통예술은 전통 공간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공간은 공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이러한 공간을 바라보는 오늘날의 시선은 어떠해야 할까요?
이재원┃다양한 시각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한옥과 관련해 ‘휴식’이나 ‘자연의 미(美)’를 떠올리지만, 이 조용한 공간에서 록 페스티벌도 상상해 볼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한옥은 사람과 공존하는 건축물이기에 사람과 함께 하며 호흡할 때 건축의 건강성이 유지됩니다. 그래서 공연을 통해 사람들이 머무르게 할 필요도 있어요.
김지욱┃한옥에는 사람의 온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일례로 한옥의 온돌을 계속 사용해야 건축물의 건강이 오래간다고도 하고요. 이러한 맥락에서 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은 예술-사람-공간이 공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일례로 작년(2022)에는 ‘남산골아트랩 非틀다’ 시리즈로 한옥마을 내 이승업가옥에서 조원 작가의 ‘공간비틀기’전(10.25~11.20)를 갖기도 했습니다. 한옥을 전시장으로 삼은 것이었죠. 이처럼 전통과 현재, 사람과 공간을 맞붙일 기획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공간’은 ‘공연’에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공처이기도 하지만, 한편 공연을 위해 전문화된 공간이 아니기에,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밤마실의 경우는 무엇이 있었나요?
김동환┃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전통예술이 ‘공간’으로부터 외지인 취급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게 마당이었을 때도, 혹은 실내일 때도 전통예술이 이제는 ‘고향’을 오랫동안 떠나 버린 어색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밤마실을 준비하면서 남산골한옥마을‧서울남산국악당과 어울리는 캐릭터를 찾는 게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민속촌’이라고 하면 우리는 방송미디어를 통해 접한 처녀 귀신, 욕심 많은 양반 등을 쉽게 떠올리는데, 남산은 좀 달랐어요. 특정 공간이 공연 공간으로 자리 잡으려면 이러한 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연희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도 있었어요. 공간을 이동하며 관객을 이끄는 배우의 역할도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실 굿이나 탈춤에서 관객과의 상호 호흡을 조절하고 연출하는 꾼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번 밤마실을 통해 오늘날 필요한 연희의 기술이 무엇인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공간과 연결되는 캐릭터까진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생각해 보니 이러한 특정 캐릭터가 어떤 공간에 몰입하게 하는 좋은 ‘안내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동환┃외국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본 적이 있는데요. 하나의 거대한 세계이자, 공간을 대변하는 세계관과 그것에 몰입하게 하는 캐릭터가 있더군요. 이에 비해 한국의 놀이공원은 그런 것이 부족합니다. 그런 점에서 국악당과 한옥마을에도 공간을 대표하는 세계관과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더군요. 예를 들어 국악당을 품은 마을이니 소리와 관련된 캐릭터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진이┃올해(2023)의 밤마실은 국악당 내 출입 금지 구역, 그러니까 관객이 공연장 외 평소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을 활용했습니다. 국악당 내 여러 공간마다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설정했고, 이를 스토리텔링화했습니다. 저 역시 여러 캐릭터가 연희나 국악과 잘 맞아떨어지려면 아직은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주 예술가(단체) 제도를 통해 전통적인 ‘공간’에 ‘공연’과 ‘인간’과 ‘예술’을 공존하게 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재원┃공연장에서 빛난 예술단체라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공간과의 성격이 잘 맞아야 하고, 공간과 그들의 콘텐츠가 잘 맞물리고 기능할 수 있는 여러 보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준비가 잘되지 않으면 오히려 공간의 특성이 예술가(단체)에게 상상의 자극제가 아닌 굴레가 되기도 할 테니까요. 물론 이러한 것이 잘 될 때 공간과 공연의 협업은 새로운 소비와 경제 형태를 만들 겁니다. 에든버러에 갔을 적에 영국식 펍(Pub)에서 공연을 하는 것을 보았는데요. 그런 장소가 300곳이 넘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공연 수익 구조를 창출해 나간다는 점에서 부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