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닫히고 1년여 동안 해외여행이 어렵게 되자 대안으로 국내 여행이 활성화되며 다양하고 새로운 여행지와 여행콘텐츠를 찾기 위해 여행업계와 여행객들의 발길이 바빠지고 있다. 그동안 지나쳤던 지역의 볼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단체여행보다는 소규모 단위로 여행의 흐름이 바뀌고 있으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여행에 대한 여행자들의 욕구 변화와 콘텐츠의 차별화는 여행업계의 당면한 과제가 되었다.
많은 해외 관광이 찾던 서울 또한 명동, 동대문 의류상가, 광장시장을 비롯해 경복궁과 인사동은 여행객의 발길이 끊겨 경제적인 타격과 함께 상권이 침체 되고 있어 회복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그동안 양적 성장에 치중했던 여행업계도 이번 기회에 만족도 높고 내실 있는 여행상품 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울의 장점은 오랜 역사가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편리함과 다양함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한류 콘텐츠와 IT강국의 이미지와 함께 조선시대 한양에 해당하는 종로구와 중구에 소재한 다양한 역사문화유산은 매력적인 콘텐츠로 이미 여행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 고궁을 방문해서 한복을 입고 여행의 추억을 기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고 있다.
필자는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의 한국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자문하며, 최근 대중교통을 이용해 편리하게 이동하며 서울을 여행할 수 있는 도보 답사 코스를 조사차 다녀왔다. 지하철 3호선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경복궁 서편의 서촌(西村)과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북촌(北村) 그리고 남산자락의 남산골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쇼핑이나 맛집 탐방이 아닌 역사적 인물과 장소를 중심으로 한 서울의 속살을 들여다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으로 구상하고 있다.
통인시장을 빠져나오면 한양의 서쪽에 자리한 내사산(內四山)의 하나이자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로 유명한 인왕산 자락으로 주택가 사잇길을 걷다 보면, 서울시 기념물 제31호인 수성동계곡에 이른다. 옛 그림 속의 정취만큼은 아니지만 잘 가꾼 숲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며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잠시 정자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며 쉬었다 골목길을 따라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이 있었다는 안내판을 보게 되는데 종로구는 윤동주를 기념하며 윤동주문학관과 윤동주의 언덕 등 다양한 기념물로 시인을 기억하고 있다. 걸음을 옮겨 박노수 화백이 집과 그림을 기증해 종로구가 구립미술관으로 꾸민 박노수가옥에 도착한다. 일제 강점기에 한옥과 양옥의 건축양식을 혼용해 지은 주택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에서 예술가가 남긴 고마운 유산의 의미를 헤아려본다.
다시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 박노수 화백의 스승이었던 청전(靑田) 이상백 화백의 가옥과 일제 강점기 천재 시인이었던 이상이 머물렀던 ‘이상의 집’을 둘러본다. 도로를 건너 이제 서촌 답사의 마지막 코스로 향하니 통의동 백송(白松)이 있었던 흔적을 지나 경복궁의 서문(西門)인 영추문(迎秋門)의 늠름하고 믿음직한 모습을 만나게 되고 효자사거리 방면으로 올라가면, 일제 강점기 문인(文人)들이 <시인부락(詩人部落)>이라는 잡지를 창간했고 지금은 전시시설로 쓰이는 보안여관에 도착한다. 근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시인과 화가들의 흔적을 통해 예술가의 치열했던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서촌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북촌(北村)은 다시 사간동, 안국동, 재동, 가회동 계동, 원서동 등 작은 마을들이 모인 지역을 부르는 이름으로, 조선의 개국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중심이므로 비교적 전통한옥을 잘 보존하고 있어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명소이자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잘 갖추어졌다.
창덕궁에서 출발해 담장을 따라 원서동을 올라가며 북촌팔경(北村八景) 중의 하나인 창덕궁의 담과 전각들을 훔쳐보고 다시 부지런히 걷다 보면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인 궁중음식을 보존 계승하는 (사)궁중음식연구소를 만나게 된다. 아담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한옥으로 1대 보유자인 고(故) 황혜성 교수의 따님이자 2대 보유자인 한복려 선생의, 지금도 제자들과 함께 전통의 손맛과 품격을 전수하고 있는 공간이다. 원서동 빨래터를 지나 최초의 서양화가로서 후진을 양성하고 근대적 화단을 형성하고 이끌어나간 고희동 선생이 살았던 고희동가옥에 들려 땀을 식히며 전시를 관람했다.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서 오르막길을 지나 계동길로 들어서면 1926년 6.10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중앙고등학교에 도착한다. 일제 강점기 우국지사들이 세운 학교로 중세 고딕풍의 석조 건물로 건축한 교사가 아름답다. 많은 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한 가운데 아직도 도심에 위치한 유서 깊은 학교다. 계속해서 가회동 방면으로 걸어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가지런한 한옥 처마가 아름답고 역시 북촌팔경 중의 하나인 가회동 한옥에 들어선다. 멀리 남산이 보이는 북촌의 언덕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시간여행을 잠시 한다.
종로3가에서 청계천과 을지로3가를 지나 3호선과 4호선이 지나는 충무로역 앞에 도착하면 지난 1998년 개관한 남산골한옥마을이 있어 많은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2019년 연말 기준 150만 명 이상이 다녀간 명소로 서울 시내에 산재했던 문화재급 한옥을 이전 건축해 조성한 마을로 다섯 채의 한옥에서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과 명절과 세시풍속을 재현하고 있다.
남산골한옥마을은 지리적으로는 명동 – 남산골한옥마을 – 광장시장 – 동대문시장 – 남산타워로 이어지는 관광명소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에 따라 조성된 정원과 숲길이 있어 사시사철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과거 남산자락 아래 있었던 남촌을 계승해 우리의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서울관광의 여행자 라운지 역할을 하는 서울 여행과 대한민국 여행의 허브 공간이 되고자,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지역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힘쓰고 있다. 또한 300석 규모 전통예술 공연을 위한 전문공연장도 있어 365일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
익숙하지만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는 서울의 역사와 인물, 그리고 이야기가 있는 숨겨진 공간을 찾아 신발 끈을 조이고 안내 지도와 앱을 켜고 서울의 속살을 걸어보고 느껴보자.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처럼 서울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각주)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관광객이 관광지에 몰려들면서 관광객이 도시를 점령하고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현상을 말한다.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되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외부 관광객들의 관광지 방문으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권과 환경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조용히 여행하는 관광형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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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수정: 2021.02.11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