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돈화문국악당 <2022 실내악축제>
※ <2022 실내악축제>를 감상한 두 작곡가 유은선과 유민희의 리뷰를 동시에 게재합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2022 실내악축제’가 8월 10일부터 21일까지 열렸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 KBS국악관현악단이 주축을 이루어 진행한 작년과 달리, 올해는 작곡가 김상욱이 음악감독을 맡았고 여러 앙상블은 물론 축제를 위한 프로젝트 앙상블도 신설되었다.
김상욱 음악감독은 이 축제를 준비하며 ‘미래에 다시 연주될 실내악은 어떤 모습일까’, ‘서양의 현악 4중주와 같이 지속적으로 연주될 한국 실내악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던졌는데, 이러한 그의 화두는 이번 축제에 실질적으로 작용했다. 축제는 10일·12일·17일·19일·21일에 다양한 콘셉트로 진행되었다. 김상욱 음악감독은 다양한 악기 편성, 마이크와 스피커를 이용하지 않는 서울돈화문국악당 특유의 자연음향에 집중하여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10일 공연은 해금앙상블 셋닮과 아쟁앙상블 Bow+ing(이하 아쟁앙상블 보잉)이 활대로 연주하는 악기들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셋닮은 이해식(김명옥 편곡)의 세 대의 해금을 위한 <춤사리기>, 이정면의 <Drumming & Scat for Masic Strings>을 연주하였다. 초연 시 시대를 앞서는 곡으로 평가되었던 이해식의 작품음 이제 창작국악의 고전이 되었다. 그동안의 다양한 시도와 많은 곡이 창작될 수 있었던 환경은 이해식이 후대에 남긴 긍정의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세월의 흐름과 창작음악의 흐름도 느낄 수 있었다. 3대의 해금중주는 서로 비슷한 역할과 음역대의 악기로 공간감을 채워주기에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셋닮의 원숙한 연주와 조화는 깔끔한 연주로 이어졌다.
아쟁앙상블 보잉의 무대에서는 손다혜의 <구름 위로 올라간 나비>, 이고운의 아쟁앙상블을 위한 <Bow+ing Gut>이 연주되었다. 두 곡 모두 젊은 작곡가들에 의해 잘 다듬어져 있었고, 세 명의 아쟁 연주자의 기량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해금 창작곡에 비해 아쟁 창작곡의 역사는 짧다. 그래서 아쟁 창작곡과 아쟁 앙상블은 발전의 가능성이 많으며, 작곡가와 연주자가 함께 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실내악축제를 위해 위촉·초연된 작곡가 황재인의 <어이아이(於異阿異)>였다. 황재인은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해금을 전공자 수준으로 구사하는 작곡가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로 진학하며 작곡가의 길에 들어섰다. 황재인의 음악은 활력이 넘쳤다. 연주자들은 한시도 악보와 지휘자에게 눈을 떼지 않고 집중했다. 황재인은 전통음악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변용 가능성 있는 재료로 사용하여, 악기의 기교를 최대로 살리는 음악을 만들었다. 황재인의 새로움이 가득한 작품은 앙상블들의 연주력에 이바지하며, 한편 관객들도 설레게 하였다.
실내악축제 중 12일 공연은 한국거문고앙상블과 서울가야금앙상블이 손 끝에서 만들어내는 섬세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한국거문고앙상블은 이경은의 4대의 거문고를 위한 <초소(俏俏)>, 김성국의 거문고 2중주를 위한 <다드래기>를 연주했다. <초소>는 거문고 주법과 여음을 살린 선율의 진행이 돋보였고, <다드래기>는 미니멀한 조각의 발전과, 연속 동음이나 패턴을 반복하며 한국음악의 리듬을 강조하는 특징이 잘 느껴졌다.
서울가야금앙상블은 도널드 워맥의 <미로>와 김현섭의 <4(Sha)Manism>을 연주하였다. 4대의 25현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미로’는 예측할 수 없는 듯한 느낌과,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적인 음열로 진행되며, 제목의 상징성을 부각시켰다. 김현섭의 작품은 4대의 산조가야금을 위한 곡으로 민속 장단을 활용했고, 변화음들로 새로움을 모색하며 진행되었다.
두 앙상블은 이번 실내악 축제를 위해 위촉된 장태평의 <거울>을 연주했다. 이 곡은 작곡가의 세계관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곡으로, 죽음과 삶을 이야기하였고, 세상을 등진 사람을 이야기했다. 자아를 상실하고 고뇌하는 현대인의 비극성을 이상의 시 <거울>에서 영감을 얻어 거문고와 가야금으로 그려냈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내용만큼이나 밀도가 높은 곡이었다. 원숙미 있는 거문고 연주자들과 젊은 가야금 연주자들이 화합하여 환상적인 호흡을 맞추었다.
축제 중 두 번째 공연까지 현악기 중심으로 구성되어 아카데믹한 곡들을 연주했다면, 세 번째인 17일 공연은 관악기의 선율을 느낄 수 있는, 대중적이면서도 전통적인 스타일의 곡으로 구성되었다. 17일에는 대금‧퉁소‧소금‧단소 등 대나무 관악기로 구성된 떼바람소리, 피리‧대피리‧태평소‧생황으로 구성된 앙상블 후요의 무대였다.
8인이 함께 한 떼바람소리는 류형선의 대금합주를 위한 <뱃놀이>, 조용욱의 <토끼몰이>를 연주했다. <뱃놀이>는 창작된 지 거의 20년이 가까운 곡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는데, 연주자들이 오랜 시간 함께 하여서인지 호흡은 정겹고 편안하게 다가왔다. <토끼몰이>는 미니멀한 양식의 곡으로 선율의 반복과 변화, 발전을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연주된 곡은 김동근의 <봉덕이 찾기>였다. 허튼타령 장단으로 진행되는 이 곡은 전통적인 선율의 정겨움과 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어 5명이 함께 한 앙상블 후요의 <숨의 노래>가 연주되었다. 이 곡은 사람의 숨과 그것이 들어간 악기의 공명을 주목하며 만든 곡이라고 했다. 이들의 연주력은 뛰어났으나 곡의 형식미와 구성면에선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이어 손다혜의 <Identity(거울속의 나)>를 연주하였다. 손다혜의 음악은 감성적 멜로디와 드라마틱한 진행으로 듣는 이들에게 공감 에너지를 주었다. 후요의 멤버들이 만든 <Higher>는 <천년만세> 중 ‘계면가락도드리’와 ‘양청도드리’를 앙상블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것으로, 대중성을 갖추었으면서도 <천년만세>의 느낌이 짙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다만 원곡의 선율이 너무 강했기에 ‘후요 작곡’이 아닌 ‘후요 구성’이라고 표기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떼바람소리’와 ‘후요’가 함께 위촉·초연한 곡은 이유정의 <열음 소나기>였다. 이유정은 ‘여름’과 ‘열 개의 음’을 상징하는 말로 ‘열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소나기가 몰려오기 전 대기의 훈기와 습기와 열기, 빗방울들의 움직임, 비가 쏟아진 후의 화창함까지를 음향과 음악적으로 풀어냈다. 음악의 전개에서 이유와 논리가 느껴지는 작품이었고, 두 팀이 합쳐서 만들어내는 연주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실내악축제 중 10일·12일·17일의 공연이 편성과 앙상블을 중심으로 한 연주였다면, 19일·21일의 공연은 음악감독의 기획과 선곡이 직접 반영된 프로그램이라 볼 수 있다. 김상욱 음악감독은 중학교 시절 거문고를 전공하고, 국악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국음악 작곡을 전공하였다. 이후 미국에 유학하여 서양음악 작곡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그의 작품 경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국음악의 본질을 중시하면서, 그것이 21세기의 음악으로 자리 잡는 것과 전 세계 어디에서나 한국악기와 서양악기가 동시에 연주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경향성을 강하게 보여준다.
19일 공연에는 그가 지향하는 음악의 색채가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색다른 조우‧음악의 경계를 넘어’라는 슬로건으로 준비한 이날의 공연은 한국악기와 서양악기가 함께 편성된 곡들로 구성되었다. 실내악 축제를 위해 꾸려진 ‘페스티벌 앙상블’은 대금, 피리, 플루트, 바순, 타악기 편성의 팀이다.
첫 곡은 김사랑의 <The Prism Project> 중 ‘피리들의 노래’였다. 동‧서양 관악기로 구성된 곡으로, 관악기의 호흡을 활용한 음 진행과 악기의 연주기법, 반복되는 구간 등으로 곡을 발전시켜 나갔다. 이번 축제를 위해 위촉·초연된 이고은의 <시간의 여정: 다섯>은 거문고·비올라·타악기를 위한 곡이다. 이고운은 중학교 시절에 타악을 전공하고, 고등학교에서 대학원 과정까지 한국음악 작곡을 전공하였다. 강준일을 중심으로 한 서울음악학회(SMA)에서 서양음악도 공부했는데,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전통음악의 장단과 선법은 물론 20세기 서양음악의 어법이 어우러져 있다. <시간의 여정: 다섯>은 장구와 거문고가 만드는 리듬과 선율에 비올라의 감각적 선율이 돋보인 곡이었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연주자들이 즐기고, 대중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이고은만의 특색이 잘 담겨 있었다.
김상욱의 <산조의 변형(Metamorphosis of Sanjo)>은 전통음악을 재해석했으며, 전통음악의 경계를 넘어 현대음악으로 연결하는 곡이어서 이목을 끌었다. 마지막 곡은 임준희의 해금과 가야금과 첼로를 위한 <상한 영혼을 위한 엘레지>였다. 이 날의 연주는 작품에 내재된 세련미만큼이나 연주자들의 뛰어난 연주력과 열정이 돋보였다.
실내악축제의 마지막 21일 공연은 ‘국악 실내악이 만들어 내는 개성있는 음악이야기’라는 슬로건이 걸렸고, 이번 축제를 위해 꾸려진 ‘페스티벌 앙상블’이 연주를 맡았다.
첫 곡은 백대웅의 다섯 악기를 위한 <몽금포 타령>이었다. 백대웅은 전통음악의 선법과 장단에 대한 연구로 한 평생을 바친 이론가이지만, 정겹고 논리적인 작곡가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자리였다. 두 번째 곡은 도널드 워맥의 <Rippling LiQuid Metal>이었다. 국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한국장단의 구조를 알고 그 리듬을 자신의 음악에 완벽하게 적용하는 작곡가답게 흥미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번 축제를 위해 위촉·초연된 삼현육각 <영산(靈山)>은 아쟁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용성의 작품으로, 그 특유의 정서와 에너지가 있다. 대풍류 장단을 악곡 안에 활용하였으며, 전통음악의 긴 호흡과 에너지를 반영시켜 만든 작품이었다. 전통음악의 본질을 살려낼 곡을 잘 만드는 작곡가로도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지막은 유민희의 <Frida Kahlo를 위한 발라드-고통받는 영혼을 위한 기도>였다. 김상욱 음악감독은 길어지는 코로나 시기에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덧붙여 음악을 설명해 주었고, 유민희가 프리다 칼로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활용한 특수악기 ‘축’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다. 페스티벌 앙상블의 모든 연주자가 동원된 큰 편성의 곡이었는데, 그들의 집중도 있는 연주와 에너지가 객석까지 전해졌다.
5개 공연으로 구성되었던 실내악축제는 레퍼토리 구성도 탄탄했고, 연주자들의 기량이 돋보여 작곡가에게 흡족한 시간이었다. 이 축제를 통해,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고 있는 창작음악의 흐름을 보았고 기대하게 되었다. 모든 공연이 매진행렬을 이룬 것도 성과로 평가될 만하다.
한편 몇 가지 점검해야 할 지점도 있다. 우선 3개의 공연이 동일한 종류(同種)의 악기 앙상블로 구성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다. 모으기 쉬워서일까? 이러한 편성이 좋아서일까? 음색, 역할, 음역이 겹치는 동종(同種) 악기로 만들어진 음악의 장점도 있지만, 공간감을 형성하는 데는 한계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서양의 피아노 3중주나 현악 4중주처럼 여러 악기로 구성하고, 이에 걸맞은 곡들로 구성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편 축제를 끝낸 김상욱 음악감독과 짧은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동종악기 앙상블을 통해 악기들의 가능성과 한계를 더 명확히 보여주고, 서양의 현악 4중주처럼 정형화된 편성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는지, 더불어 이런 작업을 통해 추후 국악관현악의 발전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이번 실내악축제가 보여준 큰 힘은 한국음악의 전통을 기반에 두고 올곧게 자신의 세계를 지켜가고 있는 작곡과와 연주자들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었다. 대중적인 음악의 비중이 커져가는 창작국악계에서, 고집스레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작곡가와 연주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이러한 외로운 작업(?)에 함께 하며 장을 마련해준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실내악축제는 훗날 음악사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축제에서 연주된 음악들이 지속적인 생명력을 갖추게 된다면 ‘미래의 전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현장이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계속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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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수정: 2021.02.11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