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름

리뷰 | 서울돈화문국악당 [돈화문음악극축제] ②

구수정
사진제공서울돈화문국악당
발행일2024.06.19

그 아이는 무엇을 보았을까

광대생각 <줄타는 아이와 아프리카 도마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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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광대는 재주꾼이자 개그맨, 사회평론가, 그리고 서민과 양반을 아우르는 평화주의자이다. 조선 후기 송만재가 지은 <관우희(觀優戱)>에는 다양한 광대가 등장한다. 가곡과 음률은 물론이고 판소리, 줄타기, 땅재주, 탈놀이, 검무와 소학지희, 무가, 꼭두각시놀음이 바로 광대들의 종목이다. 이들은 재주는 물론이고 관중을 사로잡는 연기력도 갖춰야 한다. 또 마을을 돌며 나라 소식도 전해주고 못된 탐관오리도 잘근잘근 씹어주는 현실감각도 가지고 있다. 농사일을 잠시 내려놓고 축제를 벌이는 단오나 한가위 탈판에서는 꽤나 많은 것이 허용되기도 한다. 지배계급이었던 양반들은 자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도 짐짓 모른 척한다. 관객들은 소릿광대의 소리에 마음을 적시고, 문둥이가 힘겹게 소고를 들어 올릴 때 응원의 추임새를 넣는다. 이렇게 한 판 크게 벌이며 공동체를 공고히 하는 놀이, 그 중심에 광대가 서 있다. 그야말로 세상을 넓히는(廣) 자가 광대(廣大)인 것이다.
2024년 돈화문음악극축제의 선정작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은 이러한 광대놀음이 담긴 창작연희극이다. 5월 18일과 19일에 세 번의 공연으로 관객을 만났다.
돈화문음악극축제 포스터

부지런히 숨겨 넣은 연희적 재미

2024년 서울돈화문국악당 상주단체(서울문화재단 선정)이기도 한 ‘광대생각’은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창작연희극과 놀이 중심의 예술교육을 표방하고 있다. 어린이 환경극 <북극곰 이야기>, 동물 탈놀이 <만보와 별별머리>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연희극에 녹아든 작품을 꾸준히 만들고 있는 단체이다.
광대생각
[광대생각] 만보와 별별머리 공연사진 ⓒ광대생각, 최인호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의 첫 장면은 신나는 리듬에 배우들이 땅재주를 하거나 귀로와 젬베 같은 아프리칸 타악기를 두드리며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공연장은 반은 어린이로 나머지 반은 양육자로 만석을 이루었다. 필자가 관람했던 마지막 공연은 주인공 칠삭둥이만큼이나 어린 한 살배기 아기도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일곱 달 만에 태어난 아이는 엄마 아빠의 얼굴도 모르고 세상에 혼자 남았다. 아프리카도마뱀을 만나 꼬리를 덥석 떼어내고는 부모를 찾아 달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꽤 익숙하다. 바로 우리 신들의 내력을 풀어내는 무가의 본풀이, 영웅들의 성공 스토리가 그렇지 않은가. 바리데기 역시 일곱째 딸로 태어나 부모에게 버림받지만, 병이 든 부모를 위해 약수를 찾으러 길을 떠나고, 아기장수 짐달언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길을 나선다. 서양 고전도 마찬가지이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산속에 버려진다.
연희적 요소는 극 속에 부지런히 숨겨두었다. 칠삭둥이의 탄생은 진주 삼천포농악의 꽃천을 연상케 하는 붉은 천이 주르르 풀리면서 시작된다. 줄을 타는 것은 따라야 하는 규율이 될 때도 있고, 상모돌리기는 쳇바퀴처럼 도는 현대인의 삶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칠삭둥이에게 줄을 끊는 것은 해방과도 같다. 칠삭둥이의 엄마인 여자 씨의 직업은 전화상담원이며, 아빠 남자 씨는 인터넷 설치기사로 모두 ‘줄’과 연결되어 있다. 대사는 은유를 가득 품고 있으며 오브제 역시 그러했다. ‘짐승났소’, ‘쩡쿵’과 같이 연희에서 반복되는 말놀이도 귀에 맴돈다. 연습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오갔을 생각을 하니 은근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도마뱀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배우는 멀티맨의 기능을 한다. 여자 씨와 남자 씨가 되기도 하고 낚시꾼이 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할로도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여자 씨와 남자 씨가 배우의 실제 성별과는 다르게 역할을 맡기도 하고, 장면에 따라 한 인물의 배우가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젠더리스 캐스팅이다. 우리가 가진 고정적인 성역할이나 상황들이 연기하는 배우의 실제 성과 대비되면 그것 자체로 유머가 되기도 한다. 이런 설정은 관객이 극을 주의 깊게 쫓으며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에서는 장면마다 친절하게 짚어주었기 때문에 따라가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어른의 시선과 아이의 시선 사이에서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관객의 반인 아이들은 좀처럼 극에 집중하지 못했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옆의 어른에게 자꾸 물었다. “칠삭둥이는 왜 이렇게 무섭게 생겼어?”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야?”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가 탄탄하지 못한 아이들은 대부분 유기불안을 가지고 있다. 애착은 아이의 생존과도 직접적인 영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어린 생명체가 귀여운 외모를 가진 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배냇짓을 하며 미소를 짓는 것도 바로 생존을 위한 진화론적 방편이다. 방과 후 돌봄교실에서 아이들끼리의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엄마가 나를 찾으러 오지 않는 것이다. 바리데기 또한 유기불안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부모로부터의 위험한 부탁도 들어줄 만큼 험한 길을 택하지 않았나.
그런데 칠삭둥이는 다르다. 칠삭둥이는 ‘엄마’‘아빠’라 부르지 않고 ‘여자 씨’와 ‘남자 씨’라 부른다. 자신의 부모를 객관화하면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상황은 아이 입장에서 의아하다. 고난을 극복하고 불안을 이겨내는 성장형 주인공과는 다르게 칠삭둥이는 처음부터 본능적이지 않다. 금기와 갈등 구조가 없고 사건에 관망하는 태도를 가진 것이, 태어날 때부터 칠삭둥이는 신격이 아닌가!
오히려 깨달음을 얻는 성장형 인물은 여자 씨다. 칠삭둥이는 여자 씨의 각성을 인도하고 용서한다. 어른들을 뭉클하게 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과연 어디까지 이해했을까? 그래서 어린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극의 반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장면은 그나마 칠삭둥이에게 이입했던 아이들의 감정선을 무너트렸다. 소설로 치면 시점이 바뀌고, 드라마라면 주인공이 바뀌는 셈이다. 어린이가 극에 몰입할만한 인물은 없었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진 모든 아이는 엄마가 사라지면 당장 울음부터 터트린다. 그런데 칠삭둥이는 도대체 엄마가 없어졌는데 애타게 부르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심지어 애어른처럼 “엄마가 불쌍하다”라며 이해하려 애쓴다. 첫 단추부터 끼워지지 않으니 계속 질문투성이다. 단 한 꼭지라도 “엄마!”라고 크게 소리치며 못 말릴 만큼 엉엉 울어버렸다면 달랐을까?
누구나 어린이의 시절을 지나왔기 때문에 다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지나온 어른은 어른의 눈으로 그 시절을 다시 본다. 퇴색된 기억을 지금의 회상으로 덮어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는 미숙함과 천진함이 전부는 아니다. 10세 어린이와 7세 어린이의 세계는 다르다. 어린이도 어린이만의 마음이 있고 미학적 감각이 있다. 색깔도 아이들의 심리를 반영한다. 아이들은 생존적이다. 그렇게 여러 요소의 총합체가 어린이극의 결을 정한다. 아이를 설득시키기 위한 장치는 조금만 예리하게 분석하면 다정히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광대의 몫은 충분했다

음악극인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의 음악은 어땠을까. 잘 훈련된 배우들은 타악기 연주나 노래의 전달력도 좋았다. 노래와 연주의 배분은 극을 해치지 않는 정도를 가지고 있으며 도마뱀의 목소리는 소박한 멋이 있었다. 줄을 타는 가야금, 해금,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아프리칸 느낌의 여러 타악기가 영리하게 선택되었다. 그런데 줄이 가진 상징성이 음악적 내용에서도 발휘되고 있었는가는 의문이 든다. 그야말로 연주법 자체가 줄타기인 해금이 허튼타령 한 가락 뽑았으면 어떨까 싶다. 대부분의 음악이 4박 계열로 단조롭고 각인될만한 선율은 딱히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질문을 던지는 광대의 몫은 충분했다. 흥미로운 설정과 은유 가득한 대사, 전통연희에 대한 고민 등 음악극을 대하는 자세는 참으로 박수 칠만 하다. 그러나 가족극의 함정은 너무 뻔하거나 너무 어렵거나, 주요 타깃인 어린이를 명중시키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관객층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설계를 보다 촘촘하게 한다면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많은 공감을 얻어낼 것이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상주단체로 선정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제작환경에서 진화하는 ‘광대생각’이 그려낼 다음 무대가 기다려진다.
구수정
음악치료사, 음악연구자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 음악을 매개로 다양한 글쓰기를 한다. 에세이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너에게>,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를 썼다. 봉장취, 봉산탈춤, 당악 장단 등을 비롯해 현재 함경도 망묵굿을 연구 중이다.
사진제공 서울돈화문국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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