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겨울   山:門 REVIEW

리뷰 │ 서울남산국악당‧천하제일탈장공작소 공동기획 [추는 사람, 남산]

허용호
발행일2022.12.10

오늘날 탈춤에 대한 의문과 답변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전통탈춤에 대한 다양한 재해석을 통해 탈춤의 지평을 넓혀 온 대표적 연희단체이다. 이번 공연의 제목은 <추는 사람, 남산>(2022.12.1~3/서울남산국악당)이다. 아마 이 제목은 ‘남산’ 국악당에서 탈춤을 ‘추는’ 당대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공연에 담았다는 의미를 갖는 듯싶다. 그 생각은 ‘탈춤이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흘러왔다면 어떤 모습일까?’ ‘자연스러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춤사위와 음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 시대에 탈을 쓰고 하는 공연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등의 세 가지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당대 탈춤은 어떠해야 하는가?’로 수렴할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천하제일탈공작소 탈꾼들 자신의 답변이 이번 공연이라 할 수 있다.


얼굴은 가리고, 본심은 드러내고

던져진 질문들이 함축한 새로움과 변화에 대한 갈망과는 달리 이 공연에는 낯익은 것들이 많다. 연희자들이 쓰고 나오는 가면은 전통탈춤의 그것과 같다. ‘로봇목중(최민우)’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전통탈춤과 같은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양주별산대놀이 취발이 가면, 강령탈춤 미얄할미 가면, 봉산탈춤 취발이 가면, 하회별신굿탈놀이 이매 가면, 통영오광대 문둥이 가면, 고성오광대 말뚝이 가면 등을 쓰고 등장하는 것이다.
공연 구조 역시 낯설지 않다.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함께 춤춘 후, 등장인물 각각이 춤·재담·노래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다시 함께 어우러지는 춤으로 마무리 짓는 방식은 그리 낯선 구조가 아니다. 이른바 합동춤→개인별 재담과 춤→합동춤 등으로 이어지는 탈춤의 낯익은 구조를 취했다. 이러한 구조는 등장인물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동시에 함께 하나의 지향을 추구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렇게 탈춤의 가면을 쓰고 낯익은 구조를 빌려 온 공연이지만, 낯선 요소 또한 만만치 않게 존재한다. 공연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반주를 담당하는 전자기타 연주자의 모습은 탈춤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가장 낯선 것은 인물들의 성격(모습)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이매는 거침없이 노래하는 래퍼 ‘MC이노마야(이주원)’로 등장하고, 봉산탈춤의 취발이는 트렌디한 스트릿댄서 ‘인싸BARI(이정동)’가 되어있다. 강령탈춤의 미얄할미는 자기 주도적 삶을 사는 ‘할미욘세(박인선)’로 변화하고, 양주별산대놀이의 취발이는 모두가 즐기는 깨끼춤을 보급하는 ‘트레이너취발(김지훈)’ 노릇을 한다. 통영오광대의 문둥이는 현대의 건조한 삶을 대변하는 ‘일하는둥마는둥(장해솔)’이 되어있고, 고성오광대의 말뚝이는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당대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앵커말뚝이(허창열)’가 된다.
공연 내내 웃고 노래하고 춤추며 떠드는 인물들의 모습은 경쾌하고 즐거운 듯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문제 제기와 선언을 듣고 보면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때로는 직설로 때로는 에둘러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함축된 의미가 녹록지 않다. 모두가 탈춤 앞에 놓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젊은 탈꾼들의 방황과 고뇌, 불만과 희망, 욕망과 야망이 담겨있기도 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전통탈춤의 가면으로 얼굴은 여전히 가렸지만, 당대를 사는 젊은 탈꾼들의 본심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유네스코가 주목한 탈춤의 매력은

공교롭게도 필자가 공연을 관람한 전날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확정이 이루어졌다. <추는 사람, 남산>에서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이야기가 등장한다. 미얄할미는 자신의 고생, 남편의 외면, 가출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서러운 삶이 국제적으로 알려져 망신살이 뻗쳤다고 한탄한다. 탈춤의 인물답게 해학적으로 너스레를 떨며 표현하기에 여기서 슬픔의 정조는 전혀 느낄 수 없다. 미얄할미는 웃음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있기에 그러하다.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의 탈춤은 가부장제 혹은 남성 중심 사회의 폐해를 포함한 중세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대상과 주제를 유쾌하고도 신명나게 공론화한다. 바로 이러한 탈춤의 참여예술로서의 성격에 유네스코는 주목했다. 또한 관중과 함께하며 완성하는 역동적인 공연 방식 역시 유네스코가 주목한 우리 탈춤의 특징이다. 그뿐 아니라, 전 세계 무형유산 전승의 역사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전승 활동 참여, 그리고 창작탈춤·마당극·대동제로 이어지는 다양한 창조 전승 양상은 우리가 전 세계 사람과 공유할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공연을 통해 제기된 문제들은 탈춤 앞에 놓인 과제가 만만치 않음을 말한다. 나아가 그 과제 해결을 위한 노력 방안 역시 서술되었다. 그리고 모두 알고 있듯이 한국 탈춤의 특징, 활성화를 위한 과거·현재·미래의 노력, 탈춤 등재가 다른 무형유산의 인식 제고에 이바지하는바 등이 잘 정리된 모범적 사례라 평가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 등재 신청서의 주요 내용이 이번 공연에서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양주별산대놀이 취발이가 구현한 탈춤의 대중화, 강령탈춤 미얄할미가 제기한 전통탈춤의 내용 문제, 은율탈춤 목중이 역설적으로 보여준 원형 그대로의 전승이 갖는 폐해, 고성오광대의 말뚝이와 통영오광대의 문둥이가 보여준 시대를 읽어내는 참여예술의 예민함,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이매와 봉산탈춤의 취발이가 보여준 관객과 어우러짐 등이 모두 등재 신청서에서 언급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천하제일탈공작소의 젊은 탈꾼들은 탈춤의 유네스코 등재 신청서 내용을 공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의도하지 않은 이러한 일치는 젊은 탈꾼들의 고민과 유네스코의 강조점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탈춤의 당대 전승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경계선에서의 불림

탈춤 전승사를 보면 두 가지 방향이 나타난다. 탈춤 보존회 중심의 전형 전승이 그 한 방향이고, 대학 탈춤반 동아리를 중심으로 문화운동 차원에서 전개되었던 창조 전승이 또 다른 방향이다. 이번 공연의 위치를 정해본다면, 보존회 중심의 전형 전승과는 다른 창조 전승의 계통에 자리한다. 전통과 혁신, 전형과 창조 사이에서 후자에 그 방향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이번 공연이다.
이매가 전환된 ‘MC이노마야’가 노래하는 “내가 쓰고 있는 하회탈/옛날옛적사람 쓰고 놀던 탈 (···) 세월가다 뒤쳐졌지 뭐/고리타분한 트래디셔널/ (···) 트래디셔널을 트랜디하게”라는 랩 가사가 이를 잘 말해준다.
변화와 새로움을 상상하고 구체화하여 <추는 사람, 남산>이 만들어낸 것은 ‘트레이너취발’이 주도하는 탈춤의 대중화 혹은 생활 탈춤화가 이루어진 세계이다. ‘인싸BARI’같은 신명이 넘치는 놀이꾼이 판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MC이노마야’와 같이 자신을 성찰하기도 하면서 짐짓 진지해지다가 거침없는 자부심을 드러내는 탈꾼이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민감한 촉수를 들이대고 이를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앵커말뚝이’와 ‘일하는둥마는둥’도 함께 사는 곳이 천하제일탈공작소가 만들어낸 세상의 탈춤이다.
하지만 그 세상은 아직은 거칠고 아쉬운 점이 많다. 전자악기 반주와 전통탈춤의 부조화, 전통 춤사위와 새로운 춤동작의 질적 편차, 전통 재담 방식과 일상 언어 구사 사이의 거리 등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차용한 당대의 여러 장르나 공연 요소가 전통탈춤과 곳곳에서 충돌한다.
탈춤의 가면을 그대로 사용한 것 역시 지적될 만하다. 전통 가면을 쓰고 당대의 인물을 표현하는 것은 모순적이고 조화롭지 못하다. 그런데 전통 가면의 사용은 의도적일 수 있다. 천하제일탈공작소 젊은 탈꾼들의 이중적 정체성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추는 사람, 남산’의 연희자 대부분은 전통탈춤의 전승자와 개성적인 예술가로서의 이중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전통탈춤 전승자로서의 책무와 개성적인 예술가로서의 욕망이 공존한다.
사실, 전통 가면의 착용이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은 없다. 전통 가면을 쓰고 표현하는 당대 탈꾼들의 본심은 그들이 처한 어중간한 위치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추는 사람, 남산>은 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혁신을 선언하고 있지만, 여전히 서성거린다. 그리고 아직은 멈칫거리기도 한다. 새로운 변화를 선언하는 불림을 하고 있지만, 서 있는 곳은 아직 경계선이다. 전통과 창조의 경계선에서 그들은 서성거리고 있다. 그 서성거림이 곧 당대 탈꾼들의 탈춤일 수도 있다. 그 서성거림을 적극적으로 형상화했으면 어땠을까?
이 공연을 ‘경계선에서의 불림’이라 필자가 명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향과 선언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그 실체가 모호한 경계선에서의 불림에서 멈춰있다. 이제 불림이 걸맞은 당대 탈춤을 보여주어야 할 차례이다.
 
 
허용호
한국전통연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동국대학교 초빙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를 역임 후 현재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 저서로 <전통연행을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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