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다혜(이하 추): 미술 분야의 경험이 많진 않은데, 최정화 작가님과 두 번 정도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전시 개막공연을 하게 됐는데, 제가 샤먼에 관심이 많고 굿 소리 공부하는 걸 좋게 보셨나 봐요. 자기 작업에서 샤먼으로 존재해달라면서 하고 싶은 것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미술 작품 안에서 노는 것, 작품과 연결되는 것, 살아 있는 느낌, 이런 게 좋았고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양아치 작가님 작업 이미지들을 봤는데, 뭔가 다크하면서도 흥미로웠어요. 그게 에르메스 개인전이었는데, 그 공간에서 공연도 하셨죠? 보통 미술 작품은 그저 봐야만 하고 교감하기 어려운 느낌이 있는데, 그런 열린 공간에 호기심이 가고 마음이 동하는 점이 있어서 좋았어요. 인터뷰 기사를 보고 저랑 관심사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양아치(이하 양): 저는 기본적으로 작업을 할 때, 신체가 후들릴 때까지 지각적으로 시간을 쓰거든요. 무서울 정도로 확 들어가야 돼요. 잡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당시 기도터를 찾아다닌 경험,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들을 경험한 끝에 손끝에서 나온 작업들이 보셨던 것처럼 다크한 거죠.
저는 모든 장르 중에서 음악 하는 사람이 구원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말로써, 언어로써 처음 세계를 여는 사람이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봐요. 정확하게는,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닌, 말하는 사람으로 보는 거죠. 그게 기도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하신 걸 보면서 그냥 ‘이분은 기도하는 건데?’라고 생각했고, 그 기도가 지금 적절한 시기에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코로나든 아니든 심신이 괴로운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추: 운명일 수도 있고 좋든 싫든 계속 이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종교와 상관없이 그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뭔가 연결되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종의 매개체라는 생각이 계속 있어요. ‘힐러(healer)’라는 것에 좀 관심이 많아요.
양: 기도를 잘해주시네요. 괜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저는 모든 음악 하는 제 지인들한테 우리를 제발 좀 구원해달라고 하거든요. 시각 체제는 너무 엄격하고 원근법 안에서 해독하는 세계잖아요. 피사체를 두고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태도가 차가워요. 그걸 부숴주는 사람이 신체를 가지고 작업하는 이들이니까, 그들에게 희망이 있는 거죠. 책임이 커요. 본인의 어떤 기운, 말과 에너지로, 치유보다는 구원이 더 맞다고 보는데, 그게 굉장히 중요하죠. 그리고 음악의 경우, 음악처럼 들리긴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메시지이고 말인데 그 힘이 잘 전달되어서 진동과 변화를 일으키면 얼마나 좋겠어요.
추: 작가님은 그런 마음으로 작가님 작품도 하세요?
양: 구원하는 건 제 역할이 아니고요. 제가 어디 다녀왔는지, 그러니까 제 신체가 무슨 경험을 했는지는 좀 공유하고 싶더라고요. 북한산이나 인왕산에 기도터가 아직 많고, 동해나 서해 쪽도 많잖아요. 특히 강화도 쪽은 아직도 무시무시해요. 생각난 김에 하나 보여드릴게요.
추: 보문사랑 전등사 정도는 가본 적이 있는데, 기도터는 많이 못 가봤어요. 이런 데는 특별히 어떻게 찾으시나요?
양: 저는 기도터를 다닌 지 한 10여 년 되는데요. 이게 꼭 이론적으로 설명되어 있는 건 아닌데, 제가 보기에 세 가지로 나뉘더라고요.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도터라면 절이 대표적이죠. 두 번째는 상징물인데 바위나 미륵불 같은 거죠. 세 번째가 허공기도터라고 혹시 들어보셨나요? 허공에 대고 기도하는 데가 있는데, 그건 찾아내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 건 그 지역의 어르신들께 물어보거나 문서들을 찾아봐야 하거든요. 그런 걸 찾아낼 때의 희열이 있어요. 그런데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공양할 여력이 안 되니 허공기도터를 가는 거죠. 조금 가진 사람은 상징물, 넉넉한 사람은 절이나 주요 시설로 가고요. 그런 과정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은 유의미해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터를 다녀봤지만 제일 좋은 기도터는 명동성당이더라고요. 최고예요. 에너지가 따뜻해요. 다른 데 가면 슬프고 사연이 절절하잖아요. 그런 게 누적되어 있으니까, 노래나 말로써 어루만져줘야 하는 거죠.
추: 명동성당에 친구 따라 가봤는데, 말씀 듣고 보니 그런 게 있는 것 같네요. 기도터에서 기도를 실제로 하지는 않으시죠?
양: 그냥 명상만 하고 기운만 느끼죠. 제가 아주 좋아하는 북한산 기도터가 있는데, 이 집만 한 바위에 신선 그림이 그려져 있거든요. 가보면 막 눈물 나요. 사람이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생각해보면 경건해져요. 저같이 시각예술 하는 사람은 그 압도감에 뭘 할 수가 없죠. 말씀드렸듯이, 노래만이, 말만이 가능한 뭔가가 있어요.
추: 저는 제주도에 자주 가는데, 굿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도 뵈러 가고, 그냥 쉬고 싶을 때 가서 쉬기도 해요. 그런데 한 번은 거문오름에 갔다가 그 스산한 기운을 두 시간 내내 느꼈는데, 밝은 날인데도 너무 무서운 거예요. 그 스산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양: 제주도에도 기도터가 어마어마한 곳이 많아요. 그곳은 아시겠지만, 4·3 때 죽은 사람들이 많죠. 사람들을 뒤져서 찾아내는 과정에서 그냥 불을 질렀다고 해요. 살려고 땅굴을 준비해서 들어가 있던 사람들이 다 타죽은 거죠. 그런 데 가셔서 노래를 해야 된다니까요. 정말 위로가 필요해요. 저는 그게 음악 하시는 분들이 할 수 있는 좋은 역할이라고 보는 거죠.
추: 그러면 평소에 공연을 즐겨 보세요?
양: 많이 보죠. 요즘에 한국의 음악이 혼성적인 걸 하니까 들여다보고 있죠. 요즘은 공연장 자체가 개방적이지 않아서 방문은 못 하지만, 그전에는 많이 다녔죠. 공연 많이 보세요?
추: 저는 굿이라는 게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영성이 담겨 있고 메시지가 있다고 느껴져서, 미천하나마 그걸 옮겨서 하는 거죠. 사실 제 음악이지만 온전한 제 창작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래도 그 언어의 힘, 그분들이 하시는 음악의 힘이 있다고 느껴지니까, 그걸 가져와서 저만의 방법으로 푸는 거죠.
양: 하시는 음악이 다 구슬프고, 힘들고, 에너지가 보통이 아니잖아요. 그게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추: 그걸 하면서 기가 자꾸 세지는 느낌이에요. 민요 할 때와 굿 음악을 할 때의 제 에너지가 달라요. 특히 방울을 흔들 때 더욱. 제주도 굿에서는 방울을 더 많이 흔드는데, 거긴 모든 것이 너무 원초적이에요. 불돗당이라는 돌로 된 당이 있는데, 아직도 거기서 사람들이 모여서 제를 지내고 굿을 해요. 아직도 이런 게 있다니,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걸 찾아다니면 참 재미있는데, 그러다 보니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점점 없어져요. 이런 얘길 꺼내면, 너 이러다 신 받는 거 아냐, 하는 반응이에요. 그러면서 조금씩 친구들과의 관계나 작업할 때 만나는 사람들도 바뀌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작가님은 어떻게 해서 기도터를 많이 다니게 되셨나요?
양: 저는 주로 미디어아트를 해왔는데 로직의 세계에서 작업하다 보니, 어느 순간 결정을 해야겠더라고요. 이걸 해방시키는 게 필요했던 거죠. 때마침 십 년 코딩을 해서인지 몸도 너무 아프고 해서, 내가 앞으로의 십 년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때 정한 게, 전기·전자를 배제시키자는 거예요. 이제 코딩은 안 할 건데 그런 개념은 좋아하니까, 이걸 좀 개방적으로 해체시키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최면에 관한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3분의 1의 참여자가 눈물을 흘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놀랍더라고요. 하나의 스크립트인데 다 파편적인 스토리텔링이 나와요. 제가 미디어아트를 이해하는 방식도 그런 식이에요. 스크린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멀티로 쏟아내기보다 거꾸로 가길 바랐어요. 전기·전자 없으면 미디어 작업 못 한다는 건 웃기는 얘기죠. 그런데 이제야 이런 생각에 공감해주지 처음엔 말도 안 된다는 소릴 많이 들었어요.
요즘 메타버스, 비트코인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예전엔 그런 말이 없었고, ‘포스트 오브제’라는 말이 있었어요. 거기에 비트코인 개념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그게 무슨 소리냐,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일어났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하시는 작업도 스스로 정리한 개념들에 대해 불편한 피드백이 올 수 있어요. 나중엔 그게 당연해지는데 문제는 그때 작업량이 부족하면 참 곤란해지죠. 결국 작업 많이 하시라는 응원이에요.(웃음) 그런데 그때 그럴 수 있었던 건 친구들의 응원도 있었어요. 그런 동료들이 참 중요했던 것 같아요.
추: 맞아요. 독려해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처럼 저도 틀에 갇혀있지 못 하는 사람이니까, 처음에 약간 삿대질 받는 사람 중 한 명이 되는 것 같아요.
양: 요즘에는 미술관이 다원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무용수든 음악 하는 사람이든 미술가와 협업이 실제로 많잖아요. 그런 걸 보면, 오늘날 미술관의 역할이 난민터와 같은 거죠. 부유하는 언어들이 미술판으로 들어가서 소화되고, 무대가 되어주는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미술 쪽에서도 작업을 많이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양: 대면이냐 비대면이냐, 줌을 쓰냐, 안 쓰느냐 자체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일상화가 돼버렸잖아요. 과거의 전기·전자 개념과도 좀 다른 것 같고, 또 제가 지금 관심을 갖는 것은 전기·전자의 환경적인 측면까지 고려해야 되는 시기가 아닌가, 라는 거예요. 사실 전기를 생산해내는 방식은 환경적으로 굉장히 불건전하거든요. 화학연료 등 굉장히 안 좋은 에너지를 많이 쓰잖아요. 이런 걸 감안하면, 외려 그런 1차적인 전기·전자를 포함해서 생각하면, 할 게 더 많다고 보고 있어요.
또 예전에 아시아문화전당 전시 준비하면서 근대에 걸친 아시아 한·중·일의 미디어 극장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거기에도 전기·전자 없이 그걸 만들어내는 단초들이 있었거든요. 우리가 100년 정도 되는 전기·전자에 발목 잡힐 필요가 없어요. 또 서구의 개념이 모든 걸 지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봐요. 극장이나 미디어 주도적인, 데이터나 전기·전자 위주의 이 시대가 놓치는 게 많아요. 예를 들면 일본에 그림 극장이란 게 있는데, 산수화나 인물에 관한 그림을 그려놓고, 한 장씩 그림을 떼어가면서 변사처럼 서사를 얘기하거든요. 스무 장에서 많게는 오십 장까지 가는데, 그걸 영화 혹은 연극처럼 해요.
추: 재미있네요. 그게 미디어잖아요.
양: 그러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아는 전기·전자의 개념도 빨리 놓아버리자는 거죠. 이 넓은 세계가 있는데 굳이 코딩하는 그런 게 불편했어요. 또 핀홀 카메라 아시죠? 그게 발전해서 지금의 카메라가 됐는데, 그게 조선 시대에도 있었어요. 그걸 정약용이 만들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어보셨죠? 이분은 천주교인이자 실학자로서 여러 기구를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핀홀 카메라의 콘셉트를 가지고 자신의 형을 그림으로 그린 게 있어요. 미디어가 있었다니까요. 그런 사례들을 찾게 되니, 제가 내린 결정이 너무 좋았고 거기에 대해 후회하지 않죠.
추: 그런데 주변에서 디지털 환경에 이미 익숙하다 보니, 비대면이 편하지 뭘 가서 보냐는 거죠. 이게 일상이 되어버리는 게 안타깝고, 이렇게 될까봐 두렵네요. 그러면 나는 다르게 존재해야 되는데, 이렇게 사람을 만날 이유도 없는데, 감각 자체가 변할까봐 걱정이에요. 이미 비대면 공연을 많이 하니, 공연한다고 할 때 약간 불편한 마음이 벌써 생기더라고요.
양: 그리고 비대면 공연을 할 때, 공기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에 공연자가 숨어버려요. 그것도 느껴져요. 너무 싫은 게 시각예술은 그런 걸 너무 잘하는 거죠. 저는 미디어아트를 하지만 신체적인 것을 더 인정하는 편이고, 사람의 감각은 데이터로 치면 어마어마한 거잖아요. 일본계 독일인 미술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이 ‘가난한 이미지’라는 말을 했어요. 저해상 이미지(gif, jpg 등)도 있지만 당장 우리를 연결시키는 네트워크가 너무 저용량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감각이 둔화되는 거죠. 그건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로 인한 연결 기술의 한계가 있어서 너무 슬픈 시대인 거죠.
추: 작가님 말씀에 너무 동의해요. 정말 감각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가다 보면 감각이 퇴화될 것 아니에요. 어떤 만화를 봤는데, 요즘 인플루언서가 유행이잖아요. 그런데 왜 친구를 만나, 간편하게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되고 영상통화 하면 되지, 그런 내용이 나와요. 인플루언서가 난 이렇게 빨리 노출시키고 그만해야 돼, 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좋은 영향력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안 만나게 되는 게 지금의 현실인 거예요.
양: 그러면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추: 앨범은 빨리 내고 싶진 않은데 녹음은 해야 하겠죠. 그리고서 그걸 올해든 언제든 싱글로 낼지 정규로 낼지 살펴보려고 해요. 7월에 국립극장에서 신곡을 선보이고, 그 외에 배우로 출연하는 창작뮤지컬도 예정되어 있고, 12월 공연도 있네요. 저는 물 같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잘 흐르고 담기는 그릇에 따라 변화할 수도 있는, 유연한 사람이기를 바라요. 다양한 무대에 서는 게 좋고, 어느 하나 안에만 갇히는 것은 싫더라고요.
양: 공연 영상 클립을 보다 보니, 제가 미술적으로 욕심이 나는 것도 있었어요. 뜬금없는 소린데, 눈을 많이 그리면 어떻겠는가. 보컬이나 연주자들의 역할이 있는데, 결국 지향하는 바가 신의 세계잖아요. 그런데 너무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는 거죠. 상징적인 것 몇 개만 미술이 개입한다면, 눈이 많은 사람이 노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 연말에 개인전에서, 눈 속에 눈동자가 많은 뭔가를 다뤘거든요. 그런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무속의 이미지에는 할아버지 얼굴 등 각종 얼굴이 포함되는데, 결국 이들은 신의 모습이죠. 그런 무대를 미술적으로 구현하면 더 강렬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추: 그럴 것 같네요. 뮤직비디오 작업에서도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시각적인 것에 저도 관심이 많아서 스스로 찾아서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좀 힘들긴 한데, 다 열려 있어요.
양: 또 제가 시각을 다루는 사람이다 보니, 영상 자체도 카메라의 위치, 편집 과정, 서사가 시각 체제 안에 들어가 있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것도 좀 해방을 시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보기에, 음악 하시는 분들의 영상에 항상 등장하는 루틴이 있어요.
추: 음악 작업을 영상으로 담는 작업도 하신 적이 있나요? 뷔요크(Bjork) 같은 가수는 굉장히 미술적으로 보이잖아요.
양: 록밴드들, 차승우 씨의 모노톤즈와도 해봤어요. CD, LP 작업도 같이했고요. 제가 복숭아로 작업한 게 있는데, 그 친구가 좋아해줘서 시각적으로도 작업한 경험이 있죠. 뷔요크의 경우, 비록 헤어지긴 했지만, 남편이 현대미술가니 오죽했겠어요. 그래서 그런 기질을 갖고 있지만 더욱 발휘된 거죠. 요즘 음악 하시는 분들이 자기를 드러내는 시각적인 조형성을 근사하게 잘 해내요. 확실히 그런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양: 그런데 제목 정하시는 것을 보니, 몽금포라든지 지명들을 빌어서 하셨는데, 저는 그런 말들이 시각적으로 잘 그려져서 좋더라고요. 그런 것을 이미 감각적으로 잘하시는 것 같아요. 언어를 잡아내는 감각이 중요해요. 만약 그게 안 되면 시각적으로 엄청나게 많이 도와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씽씽’ 때 활동을 보면서, 이게 좋다고만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사건처럼 보이더라고요. 어떠셨어요?
추: 씽씽은 사실 자의적으로 안 한 거예요. 그런데 그때 사람들의 반응이 백이면 백, 이렇게 잘 되는데 왜 안 하냐고, 계속하라고 그랬어요. 밴드라는 게 참 어렵다고 느꼈던 게, 모두가 같은 화두를 갖고 있어도 싸우는데 그렇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져요. 누군가 중간에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게 없었어요. 그런데 팀은 너무 커지고, 너무 잘 되고 있고, 그 간극이 너무 큰 거예요. 음악적인 성과나 얻은 것들이 많았고 너무 좋았지만, 결국에는 내 것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그게 있었기 때문에 내 것을 해야겠다, 느꼈던 계기가 된 거죠.
양: 저는 사실 연결을 못 지었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성공한 거죠. 그런데 저는 음악 공연 볼 때 왜 저렇게 마무리됐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돈을 많이 쓰든 안 쓰든 애매하게 마무리되는 거죠. 거기에 시각적인 측면의 고려가 필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간혹 가다 민요 공연을 보면, 거기 미술 좀 제발 바꿔줬으면 좋겠어요. 이상한 그라데이션 뒷배경에 출연자들이 귀신처럼 나타나서...(웃음) 민요는 촉각적인 감각이 더 강한데 너무 시각화되어 있는 거예요. 흥이란 게 전혀 없고요.
추: 한복 입고 이렇게 등장했다가 끝나면 다시 일렬로 퇴장하는 그 구조 말이죠? 저도 진즉에 그런 게 싫어서, 그리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싫어서, 선생님 없이 그냥 하거든요. 저는 멜론 선생님 있다, 유튜브 보면 다 있다고 얘기해요.(웃음) 물론 테크닉이 중요하긴 하지만 감정 없이 부르는 그런 노래가 너무 듣기 싫더라고요. 그런데 전통 쪽에서 스승 없이 뭘 한다는 것은 이단적인 거예요. 집도 절도 없는 것처럼 치부하거든요.
양: 앞으로 계획하고 있거나 하시고 싶은 그림들이 있으세요?
추: 개인 활동도 지속하고 또 추다혜차지스도 제가 만든 밴드니까, 그건 무가를 다루면서 계속 활동할 계획이에요. 저는 또 민요를 가지고 새로운 걸 계속 창작하고 싶거든요. 씽씽에서 민요를 즐겁게 했는데, 저는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있거나 퍼포먼스가 있는 민요를 하고 싶어요. 새롭지만 너무 난해하지 않으면서 관객과 함께하고 싶고, 듣는 민요보다는 보는 민요를 만들고 싶어요. 그걸 어떻게 시각적으로, 퍼포먼스적으로 풀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그 하나의 장치로 바디퍼커션을 민요랑 접합시켜보려고 해요. 어떤 원초적인 날것에 끌려서 그런 시도를 하는 것 같아요. 목소리나 몸의 소리나 사람 몸에서 나오는 건데, 이게 어떻게 매칭이 될까, 계속 고민 중이거든요. 그렇게 해서 12월 공연을 풀어보려고요.
또 최근에 사업자를 내면서 ‘소수민족 컴퍼니’라고 했어요. 제 전공인 서도민요나 굿은 사실 많이 다루지 않거든요. 그런데 왜 나는 이게 좋을까, 그러면서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이 소수민족의 것이라고 느껴졌어요. 지금은 거의 1인 자회사의 느낌으로 제가 소속된 저를 메이킹하는 건데, 지금은 여력이 없지만 앞으로는 그걸로 뭔가 해보지 않을까 싶어요.
양: 본인이 그걸 느끼시는 거면, 운명이라고 할까요. 꼭 해야 되는 사람인 거죠. 객석에서 제일 좋아 보이는 건 사실 저 사람이 저걸 진짜 좋아하는가보다, 라는 건데, 그러면 압도되는 거예요. 신체를 갖고 작업하시는 분이 그런 게 좋아요.
추: 작가님은 요즘에도 굉장히 바쁘신 것 같은데, 어떤 작업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양: DMZ 관련 작업을 준비 중인데, 도라산역과 파주, 강원도 군사지역을 포함해요. 과거에 <미들 코리아>라는 작업을 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제게 두 지역을 이어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두 지역이지만 남북으로도 책임이 있어서 고민하다가, 2018년쯤인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떠올랐어요. 남쪽의 삼촌과 이북의 조카들 이름이 이 씨와 리 씨로 자막에 나오는 걸 보는 순간 묘했거든요. 여기서 미술이 뭘 할 수 있을지 고심하다가 그걸 평행우주로 보고, DMZ라는 일종의 블랙홀이 가느다랗게 연결시키는 두 개의 비슷한 세계를 가진 콘셉트로 작업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요즘 자율주행 자동차에 쓰는 라이다라는 장비로 DMZ 지역에서 잡아낸 데이터값을 통해 두 세계를 연결시키는 시각 작업을 하고 있어요.
양: 두 가지 버전으로 작업 중인데 하나는 데이터를 체험할 수 있는 VR 작업, 또 하나는 영상 작업이에요. 보통 VR 하면 렌즈 기반의 어떤 컬러풀한 영상이나 이미지를 보는데, 이곳은 은폐된 장소이기도 해서 그게 시각화되기보다 데이터로 보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영상은 무용수와 함께 작업하고 있어요. 6·25 때 죽은 사람들 사진을 봤는데, 오히려 쉬는 것처럼도 보이더라고요. 그런 장면에서 리와인드를 해서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개념으로 영상 작업을 해요. 그런데 편집으로 하는 게 아니라 무용수가 모든 동작을 리와인드로 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신체가 미디어니까, 일종의 기계로서 신체가 되는 거죠. 노래를 거꾸로 하는 것도 가능할까요?
추: 쉽지 않겠네요. 아마 극처럼 접근하게 되겠죠. 역으로 플레이시킬 수는 있을 텐데, 그걸 어떻게 노래로 하죠? 이런 방법은 있을 것 같아요. 이걸 리와인드시킨 음원을 듣고 연습할 수는 있을 거예요. 작가님은 역발상의 접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비결이라도 있나요?
양: 그렇지 않아요. 사람의 성향이라고 할까요. 저는 예술가를 두 가지 유형으로 보는데, 한국에는 과거를 담보로 해서 현재에 등장하는 셜록 홈즈 형 예술가가 많죠. 그런데 대부분 그걸 깨는 예술가를 제임스 본드 형이라고 보는 거죠. 제임스 본드는 앞으로 있을 범죄와 범죄자를 추측해서 현재에 등장시키잖아요. 그런데 지금 하시는 작업도 스스로 장르를 명명하는 게 과거에 없는 장르잖아요. 그런 혼재되는 상황에서 이미 작업을 잘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추: 나름의 공통점이 있었네요. 그런데 제가 하는 작업은 셜록 홈즈 형인 거예요. 과거의 것을 끌어다 쓰긴 하니까요.
양: 그런데 논리보다는 감각적으로 하시잖아요. 없다기보다 우선하는 게 있는 거죠.
추: 맞아요. 그래서 처음에 설명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실 그냥 좋은데, 끌렸는데, 그런 원초적인 게 크니까요. 작가님 덕분에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오늘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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