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 판소리

 

다시 만드는 판의 소리 - 판소리 대학전, 판소리 문파전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한 판'의 승부

  

글_이소영


판소리를 구성하는 건 소리꾼 한 명과 고수 한 사람. 많은 장치도 필요없다. 소리꾼에게는 소리가 있으면 족하고 고수는 북과 채만 있으면 그만이다. 거기에 맘씨 좋고 오지랖 넓은 관객들만 모여주면 비로소 '판'이 완성된다. 이제 '덩'과 '쿵' 사이로 구성진 이야기가 물처럼 흘러 나오고, '쿵'과 '딱' 사이에 불꽃같은 성음이 치솟는다. 슬픔 가득한 인생의 깊은 한을 풀어내다가도, 재기 가득한 우스갯소리로 회중을 웃게 하는 판의 노래. 판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민중의 예술이자, 우리의 작은 인생사를 굽어보는 하늘의 마음이다.   
 

살아남은 귀한 음악, 판소리 다섯 마당

판소리는 오랜 세월동안 끊임없이 분화하고 세대를 거치며 변화해왔다.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다양한 유파(문파)들이 생겨났고, 소리를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진한 예술성은 오늘날 판소리의 큰 특징이 되었다. 그러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비문학의 특성으로 인해 과거에 어떤 작품이 어떻게 실연되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는 난제가 있다. 그나마 현재까지 전승이 되고 있는 판소리는 총 다섯 개. <춘향가>와 <심청가>, <흥보가>, <적벽가> 그리고 <수궁가>다. 이들을 판소리 다섯 마당이라 부른다.

 

11월 25일(수)과 27일(금), 남산골기획공연 <귀한 음악>에서는 차세대 소리꾼들의 한 판 공연이 펼쳐진다. 25일 공연은 다섯 개의 대학을 대표하는 소리 전공 학생들의, 27일 공연은 수궁가를 제외한 네 개 마당의 판소리를 보유한 각 명인들의 수제자들의 무대다.

  
 

판소리계의 어벤저스를 꿈꾸다! ‘판소리 대학전’

판소리 문파전 참가자들. 왼쪽부터 고영열(한양대), 고준석(서울대), 유태평양(전북대), 이성현(중앙대), 최잔디(한국예술종합학교)

‘판소리 대학전’에서는 한양대, 서울대, 전북대, 중앙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총 다섯 개의 대학을 대표하는 젊은 소리꾼들의 한 판 승부가 벌어진다. 무대를 장식할 고영열(한양대), 고준석(서울대), 유태평양(전북대), 이성현(중앙대), 최잔디(한예종)는 각 학교의 판소리 담당 교수의 추천을 받아 선정 되었다. 젊은 소리꾼들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대목을 선택하여 20분씩 무대를 가질 예정이다. 고영열은 춘향가 중에서 '박석틔'부터 '어사상봉'을 장기소리(특출나게 잘하는 소리)로 택했고, 고준석은 적벽가 중 '감영은 채종'부터 '불지르는 대목'까지를 부르기로 했다. 전북대의 유태평양은 흥보가 중 '흥보 박타는 대목'을, 중앙대의 이성현은 춘향가 중 '이별 대목'을 부르기로 했으며, 최잔디가 선택한 장기소리는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보다 다채로운 무대를 위해 곡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심사숙고하여 참가곡이 겹치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각 소리꾼 마다 원하는 고수를 직접 섭외하여 음악적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배려했고, 공연 순서는 당일 추첨을 통해 선정하여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판소리 대학전’에는 소리판에서 귀하다는 남성 소리꾼이 대거 참가하여 힘 있는 무대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유일한 여성 소리꾼이라는 점에서 최잔디의 무대 또한 이목을 끌 것이다. 젊고 패기 넘치는 동년배 소리꾼들이 펼치는 무대와 건강한 경쟁구도가 이번 ‘판소리 대학전’의 핵심이다. 소리판을 보러 온 관객들 또한 각 대학을 응원하며 기분 좋은 열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꾼의 자존심을 내걸다! ‘판소리 문파전’

판소리 문파전에 참가하는 소리꾼들. 왼쪽부터 강경아, 민혜성, 어연경, 이소연 

‘판소리 대학전’에 이어 27일에는 ‘판소리 문파전’이 열린다. ‘판소리 문파전’에서는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 명인들의 뒤를 잇는 네 명의 소리꾼들을 만나볼 수 있다. '판소리 문파전'의 경우 각 참가자의 곡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박송희 제5호 판소리(흥보가) 예능보유자의 제자 민혜성은 판소리 ‘흥보가’를, 성창순 제5호 판소리(심청가) 예능보유자의 제자 어연경은 판소리 ‘심청가’를, 송순섭 제5호 판소리(적벽가) 예능보유자의 제자 이소연은 판소리 ‘적벽가’를, 김수연 제5호 판소리(춘향가) 전수조교의 제자 강경아는 판소리 ‘춘향가’를 선보인다. 현존하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수궁가’를 제외한 네 마당의 판소리를 한자리에서, 그것도 이시대의 가장 훌륭한 명창들의 수제자를 통해 들어볼 수 있는 기회다. 각 참가자들은 ‘판소리 대학전’과 마찬가지로 고수를 직접 섭외할 수 있으며, 무대에 오르는 순서는 공연 당일날 제비뽑기를 통해 선정한다. 자신 뿐 아니라 스승의 명예도 함께 걸린 무대인만큼, 공연을 준비하는 각 참가자들의 열심도 뜨거울 것이다. 

 

인간문화재들이 추천한 소리꾼들 - "제 수제자를 소개합니다." 

강경아 소리꾼은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와 '이별가'를 선보일 예정이다. 
 

"내가 강경아를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르쳤는데, 소리도 야물게 하고, 또 고향은 부산인데 전라도 못지않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해요. 특히나 이번 공연은 또 잘해야 되니까 강경아를 추천했죠."

-김수연 명인 인터뷰 중

 

소리꾼 강경아는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와 '이별가'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녀는 현재 김수연 제5호 판소리(춘향가) 전수조교에게서 배우고 있으며, 스승인 김수연의 소리는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보유자인 성우향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다. 고수 자리는 조용복이 맡았다. 춘향가는 문학성과 음악성이 모두 뛰어나, 판소리 중에서도 가장 예술성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춘향가 중에서도 김세종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대체적으로 보면 춘향가가 만정제, 동초제, 정정열제가 있어요. 김세종제, 우리것까지. 대체적으로 들을 때, 내가 평가하는 건 아니고 이렇게 들을 때 정말 ‘김세종제가 우선이지 않느냐’ 그런 말을 들어요."

-김수연 명인 인터뷰 중

 

소리꾼 어연경은 판소리 심청가 중 '곽씨부인 유언하는 대목'을 부르기로 했다. 
 

한편, 소리꾼 어연경은 심청가 중 '곽씨부인 유언하는 대목'을 부른다. 어연경은 성창순 제5호 판소리(심청가) 예능보유자로부터 사사를 받았고, 성창순 명인은 심청가에 탁월했던 정응민 명창을 스승으로 모셨다. 심청가는 현존하는 다섯 마당의 판소리 중에서 가장 비극성이 강조된 소리로, 예술성에 있어서는 춘향가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간 중간에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도 있지만 대체로 슬픔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기 때문에, 최고난도의 기량이 요구되기도 하고 남성보다는 여자 소리꾼에 의해 주로 불린다고 알려져 있다. 북은 신재현 고수가 잡을 예정이다.​ 성창순 명인은 제자 어연경에 대해 타고난 소리 뿐 아니라 노력하는 태도에 대해서 칭찬했다.  

 

"어연경이는 그것 참 노력파예요. 거기에 목소리를 타고났죠. 목이 이뻐요. 아무리 많이 해도, 구성이 없는 목이 있는가 하며는, 조금 했는데도 소리를 그릴 줄 아니까. 그 색깔이 나오는 거죠. 타고 났다고 난 보고, 노력을 계속 해줬으면 좋겠어요." 

-성창순 명인 인터뷰 중

 

심청가 중에서도 어연경이 부를 대목은  '곽씨부인 유언하는 대목'이다. 이 대목은 심청가 중에서 가장 어려운 대목이라고 한다. 

 

"(대목이)아주 좋고, 잘 짜져 있어요. 그래서 힘들고 할 텐데 그냥 대충 하면 안 될 자리구나- 인제 그러면서 제가 느꼈죠. 본인도 뭔가 그런 대목을 해야 저를 알릴 수 있겠다는 욕심도 있었던 것 같네요."

-성창순 명인 인터뷰 중

소리꾼 민혜성은 흥보가 중 '셋째 박 타는 대목'부터 '놀보 제비노정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다음으로 흥보가를 맡은 소리꾼은 민혜성이다. 민혜성은 박송희 제5호 판소리(흥보가) 예능보유자의 수제자로, 흥보가는 다른 판소리에 비해 재담과 잡가가 많아서 재미있고, 장단과 소리가 딱 맞아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뿐만 아니라 대사가 많기 때문에 어단성장(대사는 말은 짧게 하고 소리를 길게 뽑아내는 창법)의 묘미가 분명한 곡이다. 박송희 명인이 이번 공연에서 민혜성을 추천한 이유는 그녀가 흥보가를 부를 때 다른 소리를 섞지 않고, 스승의 소리를 따라오려고 애쓰는 모습을 높게 샀기 때문이다. 

 

"소리의 장점은 뭐 다 소리 헌 사람들이 장점을 갖고 있지마는, 그중에서도 민혜성이는 내 소리를 흉내를 낼라고 애를 많이 쓰고, 혼자 노력도 많이 하고... 사람이 다 부드럽고 좋은걸 하고싶지, 그렇게 어려운 것을 하고 싶어 하겠어요. 그래서 그 마음이 고맙고, 참 자신의 마음을 내 마음과 같이 할라고 애를 쓰는 제자입니다."

-박송희 명인 인터뷰 중

 

이번에 그녀가 부를 대목은 흥보가 중 '셋째 박 타는 대목'부터 '놀보 제비노정기'다. 북은 최광수 고수가 잡는다. 

 

"노정기라 하면 흥보 노정기가 있고 놀보 노정기가 있어요. 이 노정기는 다 유명한 선생님들을 통해 전해져서 가치가 있죠. 특히 놀보 노정기는 장판기씨의 더늠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연에서 민혜성이가 아마 노정기까지 할 것입니다." 

-박송희 명인 인터뷰 중

이소연 소리꾼은 판소리 적벽가 중 '적벽대전'부터 '새타령'을 부른다. 
 

‘판소리 문파전’에 참가하는 소리꾼들 중 가장 나이가 적은 참가자는 이소연이다. 이소연은 송순섭 제5호 판소리(적벽가) 예능보유자에게 사사를 받았으며, 북은 정명기 고수가 잡기로 했다. 적벽가는 중국의 소설 <삼국지연>의 일부를 판소리로 짠 음악으로 유비, 관우, 장비와 공명이 위나라의 조조를 무찌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송순섭 명인은 제자 이소연이 "장음과 단음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알고, 발음을 제대로 낸다"며, "내가 제자 하나는 참 잘 길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이소연이 준비한 대목은 적벽가 중에서도 '적벽대전'부터 '새타령'이다.
 

"적벽가 하는 사람들은 거그가 눈대목이라고 다 좋아하거든. 들어볼래도 다 거기를 들어볼라고 하고. 그런께 싸움을 잘해야 하는데 우리 이소연이는 여자면서도 여기 전부 남자들이 치고받고 싸우잖아요. 활쏘고 총쏘고 창찌르고 하는데, 근데 이소연이가 그것을 한다고했어요. 지가 그걸 또 좋아하고. 그래서 적벽대전이고. 또 인자 새타령은 거기서, 적벽대전에서 군사들이 모두 그 전쟁에서 죽었어. 그 죽은 원혼이 다 새가 되어가지고 적벽땅에서 전쟁을 일으킨 조조한테 원망을 하면서 울어. 새들이 조조를 원망하면서 우는 내용을 참 제대로 해 놓으면 눈물이 아니면 들을 수가 없어. 그런디 그런 소리를 우리 소연이가 제법 흉내를 낸다고."

-송순섭 명인 인터뷰 중


 

어제로부터 이어지는 내일의 판소리  
‘판소리 문파전’에 참가하는 각 소리꾼은 30분 동안 자신의 장기소리를 선보일 예정이고, 공연의 순서는 당일 추첨을 통해 결정된다.각 판소리를 대표하는 명창들의 소리를 물려받았다 할지라도, 이중에는 그 소리를 오롯이 지키는 이가 있을 것이고 자신만의 소리로 재탄생 시키는 이가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오늘, 이들이 부르는 무대를 통해 우리는 다음 세대의 판소리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명인의 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차세대 명창 4인이 만드는 서로 다른 마당의 소리. 각 문파의 자존심을 걸고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계속해서 전승해 나가야 할 귀한 소리들이 한데 어울리는 소중한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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