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공연과 팀 결성에 대하여

 

주영호 : ‘청배연희단(이하 ‘청배’)’은 2001년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연희과 출신들이 모여서 결성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학교에서 배운 전통연희로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모였고, 출신들이 다 경상도라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첫 공연은 2001년 말에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했습니다. 원래 쪼매난 공연을 할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창단공연이 됐어요. 그 전까지는 학교에서 대규모 인원으로 공연을 했다면, 이 땐 소규모 인원으로 밖에서 했죠.

 

안대천 : ‘연희집단 The 광대(이하 ‘The광대’)’는 2006년에 생겼습니다. 그 때 학교에 이윤택 연출가가 와서 수업을 했는데 ‘창작연희’ 라는 게 있다고 사기(?)를 치셨거든요. (웃음) 그 때 저희들이 낸 아이디어를 잘 보시더니 본인 공연 때 그걸 막 풀어내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당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졸업한 동기 다섯 명과 ‘The광대’ 친구 다섯 명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첫 작품은 <타이거 헌터> 라는 작품입니다. 창작 연희극인데 4D아트에요. 망했어요. (웃음) 인간문화재 선생님들도 몇 분 오셨는데 굳은 얼굴로 ‘수고했다’ 이러시더라고요. 행사공연 뛰면서 제작비를 마련해가며 준비한 공연이었는데, 완전히 말아먹었어요. 연극과 영상과 연희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작품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앞서간 것이 아닌지…. (모두 웃음) 그거 역시도 나름대로 창작연희극의 시작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지점에서는 아쉬운 건 없습니다.

 

임영호 : ‘유희 컴퍼니(이하 ’유희‘)’는 2011년도에 지금의 국립전통예술학교(前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동문 여섯 명으로 만들어졌어요. 우리는 대중음악을 듣고 자랐는데, 국악이라는 틀에 갇히는 게 좋은 일일까? 제한을 두지 말고 창작물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고요. 공식적으로 첫 공연은 2011년 8월 27일 국립국악원이었다고 얘기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8월 22,23일에 북촌 창우극장에서 <천차만별 콘서트>로 데뷔를 했습니다. (웃음)

 

소경진 : ‘Creative Group 노니(이하 ’노니‘)’ 창단연도는 2004년도였을 거예요. 무대미술 하는 친구들과 제가 만나서 학교에서 인큐베이터 지원을 받아 시작하게 되었는데, 사실 ‘노니’ 멤버들의 베이스는 무대미술이었어요. 연극원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하던 친구들이 우리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이 있었거든요. 살펴보면 무대 뒤에서 스탭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공연을 할 수 없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노니’라는 말을 쓴 건 2006년입니다. 김경희 대표와 저하고 공동으로 시작을 했었죠. 저도 전통을 새롭게 바라보는 변화의 물결 속에 자리하고 있었고요. ‘연희’ 란 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가 제가 1기로 들어왔을 때거든요. 변방에 있던 장르가 제도권 안에 들어오게 되면서 연희 공연화에 대한 고민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게 된 거고요. 그 전까지는 민속축제에서 선을 보이는 정도였는데, 이를 넘어서서 연희를 가지고 연출된 무대 아래서 공연을 하는 개념들이 생긴 거죠. 무대 디자인하는 친구들도 한국적인 연극 무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한국적인 오브제, 즉 ‘인형’에 접근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러다보니 ‘꼭두’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김소라 : ‘여성연희단 노리꽃(이하 ‘노리꽃’)’은 2008년도에 모였고 작명 과정에는 2년 정도 걸렸습니다. (웃음) 아까 말씀하셨지만 공식적으로 대학에서 ‘연희과’가 생기고 난 뒤의 선배를 둔, 기수로 하면 4기 정도의 세대입니다. 연희과가 있는 세 개의 학교에 동시에 출강하시는 선생님이 졸업하면 무엇을 할 건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 주셨고요, 연희과 학생들은 대부분 남자인데, 연희라는 장르가 과격하고 체력적으로 힘든 분야라서 여자에겐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남자 연희꾼들은 각자 팀 활동도 하면서 국공립 단체를 비롯한 다양한 판에서 활동하는데, 여자 연희꾼들은 그렇게 못 하죠. 졸업하고 나면 그만두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우리끼리 농악이라도 일 년에 한 번 정도 같이 해보자 해서 처음 모이게 됐죠.. 그 후에 같은 연희지만 각 학교마다 배웠던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그것들을 같이 공부해서 조합해보자고 만들어진 게 ‘노리꽃’이었습니다. 작명 과정에 사연이 많아요. 기본 베이스를 풍물로 하니까 풍물단, 농악단, 예술단에 ‘여성’ 자를 붙여서 이름을 만들어 보자는 의견도 있었고요, 연희과 출신이니까 연희를 좀 넣어보고도 싶었고요. ‘노리꽃’에서 ‘꽃’ 이라는 말이 여성성을 부각시킨다, 여성을 꽃이라는 존재로만 한정시켜 형상화 시킨다고 해서 그 단어를 쓰지 말라고도 들었고요. 그래도 결국 ‘놀이판에서 피어나는 꽃’ 이라는 뜻으로 ‘노리꽃’이라는 팀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웃음) 2012년에 국립국악원에서 <청년공감>을 했던 게 데뷔 공연이었던 것 같아요.

‘태동’, ‘동천’, ‘아신’ 등 여성‘팀’ 으로 활동하던 선배님들도 가끔 있었어요. 저희하고 색깔이 조금 달랐고요. 여성 사물놀이단의 모습이었는데 오래 가지 못했던 걸로 기억해요. 결혼하고 육아가 시작되면 활동을 이어갈 수 없는 거죠. 여자니까 체력적으로 어려운 점도 있고요. 저희는 연희과 졸업을 하고 ‘청배’나 ‘The광대’를 보면서, 여자도 팀으로 할 수 있는 걸 만들어보자, 절대 뒤질 수 없다는 야망을 갖고 시작한 거죠. (웃음)

‘전통연희’ 에 대하여

 

안대천 : 다들 해외에서 ‘연희’를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저희는 ‘퍼포밍 아트(performing art)’라 하긴 좀 속상해서 고민을 하다가 ‘플레잉 아트(playing art)’라는 말을 만들었어요. 놀이니까. 연희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합의가 안 된 내용인데, 차라리 만들어내는 게 낫겠다 싶어서.

 

소경진 : 해외 분들이 인지를 잘 못하니까 기획자들이 ‘퓨전 사물놀이’라고 쓰더라고요. 저희도 해외에서는 ‘유희’를 ‘당신에게 기쁨을 드리는 단체’ 정도로 바꿔서 쓰고 있어요.

 

김소라 : 공식적으로 ‘연희’ 개념은 해외에서는 퍼포밍 아트죠 국악이지만 뮤직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또 댄스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이니까 ‘performing art’ 로 쓰는 거 같아요.

 

주영호 : 우리도 ‘퍼포밍 아트’를 많이 쓰는 편이예요. 외국에 나갔을 때 전통연희를 이야기하면 그게 뭐냐고 물어봐요. 뮤지컬인지 연극인지. 근데 우리는 계속 ‘연희’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러면 또 물어요. 월드뮤직이냐 전통음악(traditional music)이냐. 그래서 저희도 고민을 많이 했죠.

 

김소라 : 저희 팀은 이름이 ‘노리꽃’이잖아요. ‘노리(놀이)’ 자체가 ‘플레이’(play)가 될 수도 있고, 퍼포밍 아트가 될 수도 있고요. 저희는 ‘노리꽃’을 ‘놀이 플라워’라고 써요. 그러면 ‘놀이 플라워’ 가 뭐냐고 물어보시는데, 퍼포밍 아트도 될 수 있는데 판에서 노는 거니까 플레이도 될 수 있다고 설명을 해주는 거죠. ‘노리꽃’을 고유명사로 쓰는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정진세 : 국악계 안에서 ‘연희’ 의 존재감은 어느 정도일까요?

 

주영호 : 우리가 흥을 내주지만 딱히 주인공은 못되는 그런 모습이죠. 들러리가 되는 경우도 있고요. (소경진 : 바람잡이!) 네, 바람잡이 같은 그런 느낌. (모두 웃음) 저희 선배님과 선생님들은 사물놀이 팀이나 음악 팀으로 많이 돌아다녔잖아요. 그 이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 것이 제일 힘든 부분이었죠.

 

정진세 : 전통연희는 ‘전수’의 형식으로 이뤄지니까 위계가 중요해요. 또 단체로 수행되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집단성이 강조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남성성도 강하고요.

 

주영호 : 전통연희는 솔리스트가 될 수 없거든요. 나 혼자 잘해가지고서는 할 수 없어요. 팀이 되어야 하니까요. 선후배 관계도 필요하고 팀워크도 있어야 하고. 생각이 맞는 사람이 여럿이 있는 게 또 효과적이기도 하고요.

 

김소라 : 연희 팀 리더들이 책임감이 있어 보여요. 질서도 잘 잡혀있고 책임감도 굉장하다고 느껴요. 선생님들만 봐도 제자들까지 다 아우를 수 있도록 힘을 키운 분들도 꽤 봤거든요. 선배들도 팀을 꾸릴 때 10년 이상 끌고 가겠다는 생각이 있는 거 같고, 후배들이 일을 했을 때 더 힘을 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자 하는 모습도 보이고.

 

 

본격 연희연대의 시작

 

정진세 : 이번 남산국악당 프로그램 중 연희 팀들이 한데 모여서 공연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국악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모일 수 있었나요?

 

김소라 :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연희’는 다른 국악분야와 달라요. 서로 함께여야 하는 삶을 계속 오랫동안 해 왔으니까요. 크고 작은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같이 하는 게 익숙한 거예요. 거의 대부분 비슷한 일을 하는데, 누구보다 앞서야겠다, 뒤처지면 안 된단 것보단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생각들도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정진세 : 쟁쟁한 연희 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공연을 했을 때는 퍽 감개무량 했을 것 같습니다. 현장의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임영호 : 저는 공연을 준비하다 다리를 다쳤어요. 그래서 참여는 못하고 밖에서 지켜봤어요. 실은 준비를 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고, 다섯 팀이 모이다보니 의견조율이나 연습진행도 쉽지는 않았죠. 근데 공연이 올라가는 걸 보니까 굉장히 감격스러웠어요. 밖에서 보고 있자니 또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서 목발 짚고 이 쪽 저 쪽 살펴보고 그랬죠. 그렇게 가슴이 뛰었던 공연이었습니다.

 

주영호 : 처음에 창단 연주회 할 때 약간 설레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대표 상쇠라 항상 끌고 가는 역할을 위주로 했는데, 그 공연에선 내가 끌고 가는 게 없어요. 그런데도 뭔가 막 기분이 좋았어요.

 

안대천 : 사실 공연 당일 날 비중 없기로 말하면 제가 1등이었거든요. 조용히 묻혀있던 사람 중에 하난데. (모두 웃음) 취지가 우리끼리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 보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The광대’가 만들어졌고요. 사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로 모인 건 아니었는데, 모이다 보니 하나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The광대’가 만들어지고 난 뒤에는 ‘오늘 망해도 어차피 우리는 갈 길이 머니까’ 하면서 공연을 했던 것 같고요.

 

주영호 : 저희가 사실 밖에서는 서로 경쟁팀이에요. 내가 잘해야 살아남는 건데…. 근데 이번 공연은 내가 잘해야 살아남는 공연이 아니라, 나머지 팀들과 다 같이 잘하는 데에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가 있는 공연이란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걸 보고 저는 ‘아, 이제는 정말 뭉쳐야 될 시기구나, 같이 해야 하는 시기다’하는 걸 느꼈죠.

 

임영호 : 공연하는 내내 어떤 소명의식이 느껴졌어요. ‘아, 그래도 어쨌든 잘 뭉치길 잘 했구나. 우리가 뭉쳐서 뭔가에 어쨌든 힘을 보태고 있구나.’하면서요.

 

안대천 : 선생님 아래선 하고 싶은걸 못하고 시키는 것만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아마 자발적으로 모였단 점에서 더 의미가 깊은 거 같습니다.

 

김소라 : 겉으로만 보면 선생님들 위주로 돌아갔던 예전 공연하고 별반 다를 게 없거든요? 근데 우리끼리 모여서 같이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이 안에서 하고있다는 게 제일 좋았어요. 각자가 좀 더 하고 싶은 부분이 있잖아요. 탈춤이며, 사물놀이며, 연기며, 노래며…. 여러 요소들이 조합될 수 있는 게 결국 연희니까요. 각자 추구하는 스타일들이 있는데, 다섯 팀을 합쳐놓으니까 결국 하고 싶은 걸 하게 되었더라고요.

 

 

국악생존기, 생존에 대하여

 

정진세 : 팀 별로 <국악생존기>라는 타이틀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국악이 힘들다, 어렵다는 말은 아마 창단할때부터 줄곧 들어왔던 이야기일 텐데요, 지금 시점에서는 또 다르게 들릴 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임영호 : <국악생존기>란 말이 딱 어울렸던 것 같아요. 물론 각자 팀들이 잘 하고 있지만 힘든 건 사실이거든요. 어떤 사업을 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공연 하나 따내기 위해선… 시대성을 따져보면 저희 윗세대하고 어떤 선이 그어지는 어떤 세대기 때문에 나름 또 힘든 세대였었거든요.

 

안대천 : 저는 <국악생존기>이란 말을 좀 다르게 들었어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절박한 의미로서의 ‘생존’으로 듣지 않았고요,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는 스타일? 정도로 이해했어요. 솔직히 저희는 힘들지 않습니다. (모두 웃음)

 

김소라 : 저는 <국악생존기>를 두 가지로 생각했었어요. 하나는 ‘생존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거잖아요? 우리가 버텨냈구나, 하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안도했어요. 두 번째는 공연을 통해 우리가 이래서 살아남았다,를 보여주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어요.

 

소경진 : ‘The광대’ 내부에서는 <국악생존기> 무대가 아니여도 꼭 우리의 공연을 이루어 내자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기획의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젊은 연희연대가 다 같이 길놀이 프로젝트를 하는데 왜 <국악생존기>라는 표현을 써야 하나 싶었어요. ‘니나노 길놀이’가 훨씬 이슈가 될 줄 알았거든요. 근데 대중들은 그 말에 더 꽂혀 있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보면 우리가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임영호 : 저는 하고 나니까 그래도 각각이 갖고 있는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가 채워주고 있다는 느낌을 분명히 받았었어요. 물론 각자 다 잘 하고 있지만, 다른 컨텐츠들의 결합으로 완성도가 올라갈 수 있는 영역에 있어서는 <국악생존기>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영호 : 국악은 우리나라 전통음악이라는 뜻이죠. 대중음악은 보통사람들이 즐기는 음악, 클래식은 소수의 사람들이 비싸게 주고 듣는 음악이고요. 그런데 국악은 돈 주고 보는 공연이 아니에요. 아무도 안가는 공연인데 우리는 이러한 공연으로 먹고 살아야 하죠. 말 그대로 생존기예요. 우리는 고급 클래스로 가야하나 아니면 대중음악처럼 가야하나, 이런 기로에 놓여있는 상황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생존은 전통연희가 갖고 있는 스펙트럼 속에서 자기 자리를 잘 구축해야 하는 경우들이라고 생각해요.

 

안대천 : 저희들은 경우에는 야외무대에서 했잖아요? 만약에 극장 안으로 들어왔다면, 말 그대로 표를 사서 보는 실내 공연을 했다면 문제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솔직히 전통연희 공연은 돈 주고 보러 온다는 인식이 약해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존’의 방식은 기금사업이나 축제행사로 유지되고 있는 건데, 그거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게 저희가 살아가며 풀어야 할 과제이고 숙제죠.

 

연희를 창작하다

 

정진세 : 각 팀들의 고유한 연희 창작 방법론이 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소경진 : ‘노니’는 <우리 연희 다시보기>라는 연작 시리즈로 시작했었어요. 첫 발상은 ‘잊혀져가는 전통 인형극을 재해석해보자’였고, 두 번째 작품은 <린>이었는데 우리 전통 그림자극을 재해석한 작품이었고요. 세 번째 작품은 길놀이를 재해석해서 만든 <바람놀이>예요. 그리고 네 번째는 솟대놀음을 재해석 해보자 해서 <1+1=추樂남매>를 만들었죠.

 

소경진 : 5,6년 동안 꾸준히 해 온 <우리 연희 다시보기>는 잊혀졌던 것들을 기본 베이스로 하는 공연들이에요. 창작과정에서 전통적 요소들 중 모던한 게 많다고 느낀 적도 있었고요. 이제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모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연희’를 벗어나서 시대 흐름에 맞는 어떤 것을 해보자는 마음이 있어서, 키네틱 서커스라던지… 타 장르에 연희적 요소를 차용해 넣은 공연을 만들어 보자고 하고 있습니다.

 

주영호 : ‘노니’한테 부러운 게 있어요. ‘청배’는 이미 오래전에 사물놀이 풍물에 무속, 굿 요소를 가져와서 변형시켰어요. 그런데 ‘노니’는 무대디자인 같은 부분에서 전문적 감각이 있어요. 저희는 옷을 벗으라 그러면 못 벗겠거든요, 사실. 못 벗겠는데 ‘노니’는 과감하게 확 하더라고요. 사실조금 놀랐어요. 놀랍고 조금은 부러웠고. 왜냐하면 ‘청배’는 전통 느낌이 확 묻어나서 무거운 이미지잖아요. 그래서 탈의(脫衣) 같은 것도 저희는 좀 다르게 해석해야 되겠더라고요. 그런 게 많이 부러웠어요.

 

김소라 : 시대적으로 잘 변화하면서 가는 거 같아요. 흔히들 전통연희는 유지와 보존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김소라 : 옷 벗기가 쉽지 않은데. 그래도 시대에 맞게 ‘유희’랑 ‘노니’팀이 전통연희 판의 엄숙함의 영역에서 좀 앞장서서 가고 있는 느낌이 있고요. 몇 년 전만 해도 왜 옷을 벗냐, 이상한 거 아니냐, 문제가 된다, 선생님들이 뭐라고 혼낼 것이다…. 막 이런 틀이 있는데 용감하게 앞장서서 나가는 부분들이 보기 좋은 것 같아요.

 

주영호 : ‘노리꽃’도 빨리 반팔까지는 갈아입어야 돼.

 

김소라 : 우리도 나름 시스루인데? (웃음)

 

안대천 : ‘The광대’도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종합 선물세트’라고 그러죠. 저희도 처음에는 연희들을 다채롭게 잘 나열해서 보여주자고 초반 작품들을 만들었어요. 그 이후에 <전통연희 프리즘 프로젝트>에서 전통연희가 가지고 있는 정수랄까, 하나로 압축될 수 있는 무언가를 잘 재해석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비찾아 뱅뱅돌아> 를 했고, 누드를 했었죠.

 

김소라 : 충격적이었어. 너무 벗었어. (웃음)

 

안대천 : 처음 만든 팀이고 전통연희극을 계속 만들고자 하다 보니…. 일단 연출이 극을 좋아하는데, 드라마가 있어야 관객한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에 비해 저희는 광대들이 가지고 있는 신명이나 에너지로도 충분히 극을 채울 수 있다, 공연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었고요. 이 두 의견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가면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발목을 잡는 부분들이 될 수도 있는데 그걸 적당히 잘 조율하는 것도 팀의 장점인 것 같고요. 창작을 하는 특별한 방법은 없는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공연에서의 비율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연극적 요소와 재단, 소리, 춤 같은 연희의 요소들 사이의 비율이요. 그 지점에서 ‘The광대’팀의 인원이 적절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해요. 재담 좋아하는 사람 서너 명, 악기와 사물놀이 좋아하는 친구 서너 명, 무속 하는 친구, 그리고 제작하는 친구도 있고. 인원 배치 자체가 다양하니까 작품 만들 때 요소들도 좀 다채롭게 되는 것 같고. 그래서 이번엔 <굿모닝 광대굿>이라는 무속 기반 작품을 했는데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결과는 어떻게 됐든 좋든 나쁘든 결국 만들어진 것 같고 그러네요.

 

김소라 : ‘노리꽃’은 연희 전공자와 연희 전공을 한 타악주자가 반절, 장르가 완전히 국악 기악 전공자가 3명, 그리고 판소리 전공하는 친구가 있어요. 분야가 같으면서도 다른 거죠. 그래서 아까 ‘The광대’처럼 장단점이 동시에 있는데, 저는 대표로서 개인적으로 ‘연주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대표자 역할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물론 팀 자체가 잘 해서 관객들이 찾아주시는 것도 있지만, 연주자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면 공연도 완벽하게 나올 수 없단 생각이 있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각자가 좋아하는 스타일들을 잘 조율해서 연주자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정진세 : 그러니까 연희 팀에서 악기연주자들이 갖고 있는 위상 같은 거랑 연결이 되고 있는 거죠? 희생을 감수한다던지….

 

김소라 : 연희팀 자체가 타악이나 탈춤 쪽으로 좀 쏠려있다 보니…. 기악 전공자들도 연주자로서 실력을 굉장히 인정받는 친구들인데, 어떻게 하다보니까 연희 팀에 같이 있으면서….

 

정진세 : 본의 아니게 소외되고 있는 거군요.

 

김소라 : 네. 그 친구들이 감수하고 있는 부분들이 굉장히 커요. 어떻게 보면 연희 판보다 음악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들이 더 많은 친구들인데도 불구하고, 그게 못 보여지는 게 항상 개인적으로 아쉽고…. 그 친구들도 아마 그렇게 생각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저는 어쨌든 대표니까, 제 거를 못하더라도 이 친구들이 만족할 수 있는 부분들을 채워주는 형식으로 많이 가요.

 

정진세 : 기악 연주자들이 돋보일 수 있게끔.

 

김소라 : 네. 돋보이게 하고, 소리꾼도 연희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인데, 사실 소리도 독립된 하나의 ‘양식’이잖아요. 좀 더 자기 역량을 발휘해 볼 수 있는 여지들을 많이 만들려고 해요. 제가 하고 싶은 걸 하자고 했을 때는 이 친구들의 스타일과는 조금 안 맞는 부분도 생기는데, 그나마 ‘연희’ 속에 있으니까 좀 더 공통점을 가지고 가자는 식으로 조율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정진세 : 이전엔 큰 선생님만 돋보이는 정말 위계적인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모두 다 골고루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군요.

 

주영호 : 지금의 현대 연희는 그렇게 바뀌고 있는 지점이에요.

 

정진세 : 토론하고 대화하는 공동창작 과정이 중요하겠네요. 회의하고 공동창작하고 토론하는 게 현대 연희의 특징인건가요?

 

김소라 : 그게 잘 될 경우엔 시너지가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주영호 :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기존의 방식은 연희 팀에 선생님이 있다던가 뭐… 특출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위주로 보통 돌아갔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없을 때엔 보통 같이 해야 하니까 여러 사람 이야기를 듣고, 그 시간이 길어진 것 같아요.

 

김소라 : 제가 봤을 때는 많은 인원을 조율하는 거에 있어서는 도가 트셨다고 생각이 드는데. 매번 팀에서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으니까, 대표끼리 모였을 때 또 똑같은 형식으로 가는 것 같거든요? 회의를 하다 보면 ‘아, 저 대표님이 저 팀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계시는구나’하는 게 보이기도 해요. 저에겐 모두 선생님들이시기도 하니까 팀 운영에 좀 더 도움 되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정진세 : ‘청배’도 창작론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주영호 : 저희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양식을 좀 현대화하려고 하죠. 그러고 저희 팀 같은 경우는 연주자가 많고. 예를 들면, 저희 같은 경우는 ‘연희왕 타이틀 매치’라고 각 팀의 한 명씩 일대 일로 대결을 하거든요. 처음에 할 때는 전통 요소 그대로 가져와서 했고, 두 번째는 콜라보로 했고. 저희는 전통연희 요소는 안 훼손시키면서 약간 형식만 조금 다르게 가지고 들어와요.

 

정진세 : 관객과 만나는 형식을 조금 변형시키는 거군요.

 

주영호 : 네네. 전 어차피 꽹과리 치고 북포놀이 하는 사람인데, 사실 다른 걸 할 순 없거든요. 이걸 그래도 대중에게 먹히게 하려면 요즘에 있는 형식을 가지고 들어와야 하는데. 그래서 아까 얘기했잖아. 옷을 벗기가 힘든데, 옷을 벗기는 벗어야 되는데.

 

안대천 : 벗자 바지부터 하하하하

 

주영호 : 저희는 여기 있는 연희 팀들과 비교했을 때 먼저 시작한 편이고, 오래 됐잖아요. 팀이 오래되다 보니까는 선배 아닌 선배 같은 것도 있으면서….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한번 하는 게 조심스러운 거지, 이제는. 자칫 잘못하면 뭐… 그런 것도 있고. 사실은 우리 팀 끼리 판굿 배틀을 할 때도, 형식을 갖고 들어오는데 ‘형들이, 오빠들이 저걸 해?’하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 전에는 무게 잡고, 동해 무속가락 그대로 연주하고. 사물놀이 그대로 연주하고 무게 잡는 연희 팀이었는데, 그거 바꾸기도 그렇고…. 사실 저희 팀 같은 경우에는 워낙 사물놀이 기본으로 했던 팀 애들이 많았기 때문에 바꾸기가 사실 정말 힘들었어요. 저희 팀은 자꾸자꾸 인원이 줄어가는 상황이고…. 지금은 제가 가르쳤던 제자 애들이나 젊은 애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여튼 창작을 할 때 기본 틀은 잘 안 바꿔요. 형식만 바꾸죠.

 

정진세 : 만나는 방식을 고민하시는군요. 사실 연희 팀 안에서 선배로서 갖는 책임감이나 부담감이 있으시겠네요. 다들 보고 있을 텐데.

 

주영호 : 그것도 있고. 또 우리가 우리의 선배 또는 선생님이 저한테 얘기했던 게 영향력이 크죠. 일단 저희를 교육해주신 김덕수 선생님 볼 때만 하더라도 그렇고. 저 같은 경우에는 선생님하고 연주활동을 했으니까 세뇌된 것도 많고. 답답해서 나오긴 했는데, 또 나와 보니까 선생님 말도 알 것 같고. 후배들한테도 좋은 걸 물려줘야 되는데, 나쁜 걸 물려주면 안 되는데…. 그게 사실 제일 고민입니다.

창작연희팀, 사건과 변화, 위기와 극복

 

정진세 : 이야기를 통해 2000년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창작 연희의 역사가 그려지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하지만 각자 팀별로 뭐 말 못할 사건들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런 고비들을 잘 넘겨서 지금까지 잘 활동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위기가 있었는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김소라 : 저희 팀이 제일 크지 않을까요? (웃음) ‘노리꽃’은 여자들만 있잖아요. 20대를 같이 보냈는데 어느덧 30대가 시작이 됐어요. 결국 결혼과 육아 같은 부분이 여자팀들의 위기 아닌 위기라고 생각해요. 그 전에는 사실 위기라고 했을 때 ‘대체 위기가 뭘까? 돈일까? 공연이 없는 그런 걸까? 아니면 창작적인 부분인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안대천 : 현실이 제일 문제지.

 

김소라 : 네. 이제 저희 팀이 9명 정도가 있는데 그 중 반절 이상이 결혼을 했구요.

 

정진세 : 팀원들의 상황이 바뀌겠네요.

 

김소라 : 최근에는 2명이 애를 낳았는데요. 위기인가 싶으면서도, 또 다른 기회가 될 것 같다 싶어요. 원래는 에너지를 강하게 보여주는 퍼포먼스적 측면에 신경을 많이 써왔지만, 최근에 대놓고 ‘우리 임신했습니다, 엄마가 되었습니다’라고 밝혀서 여자로서 가지고 가야 하는 부분들을 연희적으로 풀어보자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이제 뛰어다니기보단 엄마가 되고, 임신을 했다는 것을 연희와 음악으로 어떻게 강요하듯 할 수 있을지,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정진세 : 여성 연희자라면 꼭 정말 풀어야 될 과제이기도 하네요. 아까 말씀해 주셨던 그 팀들이 사라졌던 이유도 어떻게 보면….

 

김소라 : 네, 그렇죠. 그래서 남자들이 나이 먹어서도 하는 것처럼, 저희도 그런 여성 팀이 되어 보자는 게 저희의 목표에요. 저희 말고도 국악 하는 친구들은 계속 나오고 있는데, 결국 여자 팀에 대한 롤모델이 없다면 그 친구들도 설 자리가 없다는 뜻이니까요. 당장 반짝 몇 개 팀 만들어서 공연을 할 수 있겠지만 이런 현실적인 위기를 잘 극복해야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요 근래에는 최고의 위기 아닌 위기가.(웃음)

 

주영호 : 지금이 위기네.

 

김소라 : 그건 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안대천 : 저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결국은 먹고 사는 게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하나 둘 셋 다 떨어져 나가요. 안정된 직장을 찾아가고. 저희는 공연이 많고 월급을 주는 ‘직장’이 아니라 ‘가족’같은 느낌인데, 결국 대표로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을 못 해준다면 제가 놓아줘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근데 거기 가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또 제대로 못하고. 여기 있을 때는 하는 게 있는데, 그런 게 아쉽더라고요. 근데 지금 지방공연 다니면서 직장에 간 친구들 보면, 또 우리를 부러워하더라고요. 하고 싶은 음악 한다고. 우리는 안정된 월급이라던가 그런 게 부러운데. 소라씨가 얘기한 것처럼 우리도 이제 가정이 생기니까, 팀과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개인의 이득을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하는데 팀을 위해선 그럴 수만은 없고. 가족한데 계속 희생해달라고 강요도 할 수 없고.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책임감이 있는 거죠. 많은 예술가들이 겪는 큰 위기인 것 같아요.

 

정진세 : 팀원들이 그만 둘 때가 좀 속상하시겠네요.

 

주영호 : 우리 팀에서 나가고 직장 찾아 갈 때가 제일 맘 아프죠.

 

임영로 : 예전과 다르게 더 힘들어져서…. 예전엔 잡기라도 했는데 요새는 차마 잡을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안대천 : 달콤한 말이 있잖아. 형 믿고 따라오라는. (모두 웃음)

 

김소라 : 현실적으로 봤을 땐 그런 부분들에 봉착을 하는데, 또 개인적으로 본다면 뭘 모르고 재미있는 음악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뭉쳐 있다 보면 뭔가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거든요. 근데 인제 서른 살이 넘어가면서 자기 주관이 생긴 거예요. 어떤 친구는 극을 하고 싶어하고, 어떤 친구는 음악을 하고 싶어하고. ‘좋은 것을 만들자’는 결론은 같지만, 성향들은 모두 뚜렷하게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절충하는 방법, 그리고 혹시나 다 못 채웠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했어요. 그것도 위기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못 채워진다면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정진세 : 네네. 사실 보내기도 해야 하는 거고요.

 

김소라 : 아까 영호씨 말씀처럼 비슷한 시기에 마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자기의 음악색깔들이 뚜렷해지는 거. 주관이 생겼는데, 팀의 색깔하고 좀 다른 거죠.

 

소경진 : 저희 같은 경우는 팀원이 두 명 밖에 없어요. 기획자도 없고. 둘이서 모든 걸 다 진행했고, 10년 해도 아니면 그만 두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게 사실 작년이었었거든요. 그 때 가장 큰 이슈로 얘기했던 게 예술적 열정이 그대로 남아있는지, 식었는지, 만약 식었다면 여기서 스탑하자고요. 옛날엔 10년 정도 한다면 어떤 자리나 어떤 위치에는 가있을 거라는 믿음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힘들었던 과정이 많았고… 결론적으로 앞으로 갈 열정이 남아있는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물론 그 열정과 관련된 요인에는 사회적 직위도 있을 수도 있고, 돈도 있을 수고 있고, 결혼도 있고… 복합적이겠죠. 그래도 예술적 열정이 남아있냐 안 남아있냐 라는 대화를 끊임없이 했어요. 사실 둘 다 많이 지쳤었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그 힘듦을 다른 시스템으로 이겨낸 거 같아요

 

정진세 : 쉬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하셨잖아요.

 

소경진 : 1년에 레파토리 공연을 5개 만든 적이 있었어요. 한 해에 세 작품. 지금도 김경희 대표는 유럽에 가있고. 계속 새로운 아이템을 찾는 중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를 찾아 가려고 하는 모습들이 지금 10년 이후의 행보가 이어지게 만들려는 몸부림이지 아닐까. 그래서 ‘노리꽃’ 대표처럼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인 것 같아요. 열정을 다 쏟아냈는데도 불구하고 뭐가 아직 남았는지, 이런 고민들의 연속인 것 같아요 사실.

 

주영호 : ‘노니’ 대표님의 열정이란 말, 힘든 중에서도 작품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게 할 수 있는 요소 같아요. 다른 팀 공연에 다닐 땐 막 날아다닐 수가 없는데 우리 공연에선 그게 가능해요. 연희는 같은 팀끼리 뭉쳐야 시너지 효과가 가장 많이 나고, 그래야만 제일 좋은 그림도 나오죠.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채워지는 거니까. 그런 열정들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거죠. 섭섭하고 상처 받은 일들도 많을텐데, 무대 올라가면 풀어지더라고요.

 

정진세 : 제가 다른 국악팀과도 같은 질문을 공유했는데요, ‘그림(the 林)’ 대표님이 그런 얘길 하시더라구요. 팀으로 남게 되면, 나중에는 음악 하는 것 보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하대요. 같이 식구처럼 지내는 게 음악을 앞선다는 얘기가 좀 약간 새롭게 들리더라구요.

 

주영호 : 그게 저희도 마찬가지였고. 연희극을 하고 재담도 좋은 약간 저희 팀은 술을 먹더라도 분위기는 팀들 마다 다 틀려요. 술 먹는 애는 먹고, 아예 안 먹는 애는 아예 안 먹고. 말 그대로 가족 같기 때문에, 가족이니까 술을 못 먹더라도 같이 앉아서 있고. 지금은 결혼을 했더라도 가족들이 공연에 같이 다녀요. 근데 공연장에서 막 가족을 챙기는 게 아니라 공연하게 해주고, 끝나고 나서 서로 소개하고, 와이프끼리 또 따로 뭔가를 만들어서 하고. 사실은 팀의 연주회에 가족을 데리고 들어온다는 건 문제가 되는 거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야 느그 식구끼리 다 해 쳐먹어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런 걸 적절하게 잘 한다는 거는 정말 잘 하고 있는 거죠 ‘The광대’ 같은 경우는.

 

안대천 : 와이프들도 플레이어 출신이라, 공연장에서 지켜야 하는 범주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눈치껏 잘 해 줘요. 이제 팀 내에서도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다른 팀 생활들을 병행하는 경우가 생겼어요. 교육사업과 공연활동을 겸해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오롯이 공연만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등등. 그러다보니 각자 팀 생활을 별개로 하게 된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해야 그런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이쪽에 더 올인할 수 있게 할 지에 대해 고민이 많아요. 그리고 이제 개인이 하고 싶은 영역들을 너무 명확히 드러내는데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지도 고민인데요. 다행히 상주단체가 되면서 단체 내 프로그램에서 각자 개인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해결 아닌 해결책이 되었어요.

 

주영호 : 어떻게 보면 곁다리인데, 우리 팀은 그런 걸 엄청 싫어했어요. 솔직히 초창기에는 소속팀에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떨어져 나간 사람도 있었고. 근데 지금 시간이 지나다보니까 지금처럼 뭉쳐야 하잖아요, 우리만 너무 모여 있으니까 문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또 열어놓고 있는데, 이것도 이것대로 줏대가 좀 흔들리는 것 같아요. 소속집단이 분명하지 않으니까.

 

김소라 : 장단점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이 팀에선 내 음악성을 다 보여줄 수가 없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힘들었거든요. 근데 저는 대표고, 하고자 하는 게 여기까지이지만 팀원들의 영역은 저의 영역과 다를 수 있죠. 근데 현실적으론, 저는 세 개의 팀 활동을 하고 있어요. ‘노리꽃’이 제 가장 큰 일이지만, 저조차도 이 안에서 다 못 채우는 경향이 있거든요? 근데 오히려 밖에 나가서 협업을 할 때, 저희는 10년 동안 프로젝트를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거기는 1년도 안 되었는데 잘 될 때가 있고. 성향이 아마 너무 다르니까 그걸 하지 말라고 할 순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지금 내린 결론은 외부활동을 막는건 아니지만 자기가 한다면 결과물을 확실히 보여달라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확실하게 애들한테 보여주고. ‘그래, 충분히 해봐. 능력이 되니까 여기서 못하는 건 밖에 나가서서 할 수 있어. 근데 대신에 어설프게 해가지고 욕먹고 오지 마. 그런 건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한다면 나가서 제대로 해가지고 ‘노리꽃’ 이름이 더 빛날 수 있게 만들고. 난 ‘노리꽃’ 단원인데 여기에서는 이런거 한다고 보여줄 수 있는 역량만 되면 얼마든지 해‘라고 할 것 같아요.

 

안대천 : 전통적으로 바람을 피더라도 본처한테 돌아오게끔 되어있는 습성이 있단 말이 있어요. 바람 많이 펴 봐라 대신. 본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되면 좋지 않을까.

 

주영호 : 저는 다른 직장생활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대표가 다른 활동 하면서 팀이 이루어지겠냐 싶어서 정리를 하고 다시 들어왔어요. 이제 돌아오면 애들은 생고가 힘들어지게 되잖아요. 거기에서 지금 볼 때 사실 지금도 여러 팀 활동 하는 게 이해가 돼요.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집과 가정에서 풀어야 되는 거지, 밖에 가서 풀면 바람이 나요. 아까 얘기했잖아요, 바람이 나는 거라고. 그걸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면 제일 좋은 거고요.

 

김소라 : 창작은 많이 경험할수록 좋죠. 저는 많이 경험할수록 눈이 넓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연희팀에서 못 볼 수 있는 걸 밖에선 확실하게 볼 수 있어요. 이건 팀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데, 저희 팀은 팀원들의 활동 범위들이 너무 달라서 편차도 꽤 커요. 누구는 관현악단에만, 누구는 연기만 했고, 누구는 풍물만 하고. 이런 게 너무 크니까 합쳐졌을 때 좋은 효과가 나긴 하지만….가. 활동 범위들이 너무 달라서. 누구는 관현악단에만 있었고. 누구는 정말 예술 단체에만 있었고. 누구는 연기만 하고 누구는 정말 풍물만 하고. 너무 이게 다른 거에요. 누구는 마당놀이만 했던 애들. 이런게 너무 크니까 그게 하나로 합쳐졌을 때 좋은 효과가 나긴 하는데 어떤 애들은 해외 나가가지고 저는 제가 팀에 위기를 준 사람 으로써 2년 넘게 외국에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팀이 유지가 되게 굉장히 팀원들 끼리에 그 힘든 부분이 굉장히 컸다라는걸 제가 너무 잘 아는데 대신 그 나가있는 동안에 보고 느낀 것들. 그걸 여기 안에서 풀고 싶어요. 공감대가 없는 거에요. 제가 밖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한 거를 애들이 이해를 못해요. 내가 여기서 풀고자 할 수 있잖아요. 밖에서 뭐가 되게 좋았는데 나중에 한국 돌아가면은 노리꽃 애들이랑 이걸 해 봐야겠다. 이런 작품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 했는데 이 친구들은 감이 없으니까 제가 말하는것들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거에요. 무슨 소리지? 언니가 갑자기 바람이 들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러니까 그거를 또 하기까지가 애들한테 충분히 경험을 시켜야 되니까 차라리 밖에 나가서 니네도 해봐라. 오픈 되있으면은 바람도 좀 넣어보고. 그래서 경험을 해봐가지고 노리꽃에서 이런걸 공감대를 형성을 하고. 9명 중에서 5명은 마음이 맞아야 이게 뭐가 만들어 지잖아요. 장 단점을 활용을 잘 할 수 있는 그런걸 계속 찾고 있는거죠.

 

정진세 : 제가 느끼기엔 잘은 모르겠지만 국악하시는 분들이 끼나 재능이 굉장히 많은데 비해서 그걸 풀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그렇게 다양하고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확실히 특히 또 젊었을 때 그런 욕망들을 다양하게 풀수록 나중에 자기 분야에 더 집중할 수 있을텐데, 그러질 못해서 더 아쉬운것 같습니다.

 

김소라 : 근데 그것도 있지 않아요? 그런 쪽으로 관심 있는 애들은 또 그렇게 해. 근데 또 안주하는 애들은 끝까지 안주만 하더라고요.

 

정진세 : 아예 뭐 외부활동에 신경이 없는 분도 있으시더라구요.

 

주영호 : 만약에 그런 성향의 친구들이 좀 굳건하게 그런 생각들을 내비치면 창작을 하고 싶어도 약간 어느 정도 열 걸음 갈 수 있는 거를 네 걸음 가고 만족하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그런 공연 작품이 나왔을 때 결과물도 약간 그런 식으로 아 쪼금만 더 가면 좋겠는데 반 정도만 가고. 옷을 벗어도 바지만 벗고 그런 경우가.

 

임영호 : 네 뭐 같은 맥락에서 같은 고민들이 있었던 거고. 저희들은 선배님들에 비해 영역이 짧아요. 짧은 데 비해서 힘들었던 점은 이제 저희가 이제 해외 진출을 아직까지도 꿈꾸고 있고. 페스티발을 올해 처음 나가게 됐는데 손가락을 펴는 시점이 엄지인지 새끼인지부터 조금 갈등이 있었고. 그로 인해서 팀이 6명인데 세명이 세명 중에 두 명이 뉴질랜드로 먼저 가서 집을 차리고 뭐 안 좋게 된 건 아니지만 집을 차리고 그렇게 있었던 지점이고. 저희는 세명이 남아서 되게 힘들었던 상황이에요. 작품 성향상 성격이 안 맞고, 예를 들어 전통에 자기가 프라이드가 있으면 하지 못하는 것들 행위들이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명이 뭉쳐서 그 세명이랑 객원을 한 1년 동안. 안돼면 이 친구를 가리켜서 이 친구를 가리켜서. 그러다 지금은 여섯명의 완전체가 됐지만. 그 부분에서 가장 힘들었구요. 그거는 이제 팀 단체 생활이다 보니까 모든 팀들이 겪을 수 있는 것들이고 요즘 저희도 요즘 좀 힘들죠. 저도 다치고, 이제 팀원 중에 한명이 좀 건강상에 문제가 있고 그러다 보니까. 팀들 내에서는 우리가 너무 예를 들어 돈을 위해서 혹사한 건 아닌가 라는 후회도 들고 의심도 들고 그래서 약간 올해는 쉬어가자 이런 말도 나오고 있고. 그러면서 서로가 조금 안정기를 찾을 때가 되지 않았나.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와서 5년 동안.

 

정진세 : 말씀 들어보니까 연희팀은 정말 몸이 제일 큰 재산이네요.

 

주영호 : 그렇죠.

 

김소라 : 맞아요.

 

김소라 : 유희팀은 위기다 지금. 대표가 다쳤으니.

 

안대천 : 쉬어야 돼.

 

임영호 : 공연 잡힌 것들을 해 내기는 바쁘지만 그런 인원들 충당해서 해 내고 있고 또 페스티벌 잡힌게 있어 나가야 되는데 저는 목발집고 나가야 되는 상황이고. 그렇게 봤을 때 디렉터들이나 이런 해외 관계자들이 어떻게 시선으로 볼 지부터 걱정이 되고. 그렇게 해서 나름 저희는 쉬어간다 1보 후퇴 3보 전진 이런 얘기들을 하고 있지만 지금이 좀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하는것도 저희 숙명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주영호 : 지금 유희 팀이 우리도 그전에 우리 팀에 벌써 경험한 애들 다쳐 봤고. 국악에 이거 하는 사람들 보험이라는게 사실은 민간단체에서 사대보험은 못 열어 주잖아요. 그러면 뭐냐면 저희 팀 같은 경우에는 한번 다치고 나서부터 보험이 없어가 사실은 보험이 이제는 공연을 할 때 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보험도 들게 되고 정리를 하게 되더라고요. 저희 같은 팀이 그랬어요. 다치고 나서 외국공연 연습하다가 다리도 부러져 버리고, 발도 돌아가 버리고, 이런 경우가 있으니까 애들이. 인대 끊어진 애들도 있었고. 일 년을 활동을 몬 하는데 이게 직장이라 그러면 보험 같은걸 해결하잖아요. 우리는 보험이 안 되니까 걔를 공연을 안 하지만 그래도 공연을 데리고 다녔어요. 그래서 수당을 챙겨줬고 사실은. 가족이니까 집에 혼자 냅두기가. 있었으니 같이 다니면서 음향이라도 좀 부스에 앉아가지고 음향 봐 달라 그랬고. 보통 팀 마찬가지고 우리는 학교 다닐 때부터 팀 활동을 했기 때문에 사실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얘기 했잖아요. 그런 부분에는 말 그대로 우리가 공연비를 모아서 등록금도 내준 적도 있고 사실은. 대회 나가 상금받은 경우에. 그렇게 해서 살아온 게 있으니까 가족처럼. 그래서 이 연희하는 팀은 사실 말 그대로 아까 요즘은 자기 발란스로 몸 풀고 그 뭐지 필라테스라 해갖고 요즘에 인자 운동선수들처럼 몸 관리하고. 그 전에 사실 그런게 없었거든요. 술 먹고 그냥 그 다음날 가고. 근데 이게 인제 전문적으로 바뀌고 우리가 전문예술인 단체로 가다보니까 그런게 체계화 되가고 잡혀가는게 많이

 

김소라 : 젊은 연희 연대. 연희 프로그램 만들어야 된다니까요?

 

안대천 : 그래서 저녁에 술 마셔 줘야되. 그래야 몸이 릴렉스해진다고. 스트레칭의 일환이야. (웃음)

 

 

창작 연희, 앞으로의 방향성

 

정진세 :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얘기해주시면 좋은데, 10년 후 정도의 이야기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국악생존기>말고 <국악중흥기>로 하자는 의견도 있긴 했어요, 큰 공감은 못 얻었지만. 하지만 어쨌든 생존기가 있었으니 정말 중흥기와 번성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각자 지나온 시절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하실 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저는 소경진 대표님이 작년에 힘들었다고 해서 신기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노니’가 연극계에서 봤을 때 왕성하게 멋진 공연들을 만들고 계시는데, 오늘 또 굉장히 힘들어 보이시고.

 

소경진 : 힘듭니다. (웃음) 저는 이제 뭐 10년을 했고…. 앞으로의 10년이라면, 일단 연희자의 길을 계속 걸어 왔다고 생각을 하고, 앞으로 10년 동안은 좋은 아티스트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티스트가 되려면 연희자로 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다른 방향성으로 연희를 이끌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됐으면 좋겠고 지금도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가고 있거든요. 팀 자체가 두 명밖에 없기 때문에. 김경희 대표도 마찬가지로 아티스트로서 본인의 스펙트럼을 굉장히 글로벌하게 넓혀가고 있고, 저 역시 마찬가지로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 안에서 조금 더 아티스트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조금 더 ‘소경진’이란 인물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별한 장점이 인정받을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는 게 제 10년 목표인 것 같아요.

 

안대천 : ‘The광대’ 팀은 올해가 10년차가 돼서 10주년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10주년 공연이란 타이틀을 정말 작게 넣든지 아예 뺄 계획입니다.

 

정진세 : 크게 의미두지 않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안대천 : 10주년 공연이 중요한 게 아니라 10주년에 걸맞는 공연을 만들자고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공연활동을 계속 하는 게 목표이긴 한데,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저희 팀의 가장 첫 번째 목표는 식구가 잘 지내는 게 일단 목표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10년 안에 경기도 일대에 식구들이 다 같이 지내면서 공연활동도 계속 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요. 교육 활동을 통해서 공동육아도 해 나갈 수 있는 예술촌, 광대촌을 만드는 게 일단 목표고.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김소라 : 좋은데요. 나도 들어가야지. (웃음)

 

안대천 : 여러분은 그냥 패스. 프리패스. (모두 웃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영호 : 저희 청배같은 경우에는 앞으로 10년. 사실은 오래 된 팀인데 제가 지금 팀 대표로서 말하자면 끝까지 살아 남는 거에요. 개길꺼에요 끝까지 걔길건데. 끝까지 개기는데 뭐냐 그러면 부끄럽지 않은 선배로서 끝까지 하고 그 다음에 밑에 후배들한테 뭔가 멘토로서 해 줄수 있는거. 그 다음에 교육적으로 제자아이들한테 가르쳐 주고 싶기도 하고. 그런 것도 있고 또 저희 팀에서 제가 못했던게 뭐냐하면. 식구 관리를 제대로 못 해준거. 다른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그래도 같이 와서 음악을 못하더라도 같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는 거고.

저희 같은 경우에는 앞으로 15주년 정도 될 때는 옛날 원년멤버 모아서 기존에 우리가 했던 작품 원작품을 같이 할 수 있게 한번 하고. 그 다음에는 저희가 그간 타이틀 매치 형식으로 해왔거든요. 배틀 형식을. 그래서 올해는 가까이 있는 팀. 내년에는 위에 있는 선배한테. 결국 김덕수 선생님 하고 맞짱을 뜨는 겁니다. 쌤한테 제가 뭐 지겠지만. (웃음) 그게 저의 목표입니다.

 

임영호 : 저희 유희팀은 해외투어 일정들을 잡고 있습니다. 저희는 벨기에 뮤직트로와 시작으로 해서요. 벨기에 뮤직트로와 벨기에서 무슨 축제 하나 돌고. 체코 오스트라바 스트라스부로 오리악 이렇게. 오리악은 아직 확정이 안돼서. 예정이고 10년 계획. 5년 계획 10년 계획.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희는 이제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약간 부딪치다 보니 저희가 아직 선배 팀들에 비해 결혼은 하나도 안 했거든요. (웃음) 결혼 하면 이제 그런 소리도 많이 듣고 주위에서 많이 보고 하니 먹고살 수 있는 문제를 안정적으로 만들자 그래서 저희도 경기도 안양으로 내려가 있는 상황이에요. 서울에는 사무실을 두고 연습실 안양으로 내려가서 올해 안양에서 기금을 받아서 농악 보급과 관련된 발표를 하고 그게 잘 되면 이제 발설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시립까지 만들어서 저희 후배들까지 잘 챙겨서 저희가 지낼 수 있게 그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김소라 : 저는 개인적으로 아, 노리꽃 출신들은 다르구나, 라고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을 주는 것. 10년안에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연희팀에서만 안착하고 싶지만은 않아요 사실. 그리고 악기 특성상도 그렇고 다양하게 다 활동 영역들이 다르기 때문에. 단지 ‘노리꽃’ 에서 이러한 것들을 해왔기 때문에 이를 시작으로 다른 부분에도 폭넓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에요. 저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저희 팀원들도 그런 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게 10년 목표입니다.

 

정진세 : 오늘 긴 시간동안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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